[권훈의 골프산책] '대세' 김지현의 부활…퍼트 연습만 하루 3시간

입력 2019-05-23 05:05
[권훈의 골프산책] '대세' 김지현의 부활…퍼트 연습만 하루 3시간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201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지현 천하'였다. '지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 4명이 7승을 쓸어 담았기에 나온 말이었다.

'지현 천하'를 이끈 주인공은 김지현(28)이었다.

김지현은 2017년에 3차례 우승을 거뒀다. 3승 가운데 난도 높은 코스에서 열려 '메이저 중의 메이저'라 불리는 한국여자오픈도 포함됐다.

전관왕에 올랐던 이정은(22)을 상대로 2차례 역전 우승을 따냈다. 김지현은 한때 이정은을 제치고 '대세'로 불렸다.

그러나 김지현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김지현은 1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2017년 2위(7억8천997만원)까지 올라갔던 상금랭킹은 지난해에는 16위(3억4천94만원)로 떨어졌다.

한차례 우승은 날씨 때문에 36홀로 축소돼 치른 국내 개막전에서 나왔다.

김지현 자신도 "행운이 따랐다"고 말할 만큼 우승의 순도가 낮았다.

4월에 거둔 이 우승 이후 컷 탈락, 46위, 28위, 40위, 40위 등 부진이 이어졌다.

하반기에 세 차례 톱10 입상을 했지만, 이미 강호의 면모는 사라졌다.

2019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KLPGA투어 판도를 전망할 때 김지현의 이름을 거론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김지현은 이번 시즌 들어 좀체 두드러진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난 12일 끝난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까지 7개 대회에 출전해 딱 한 번 톱10(8위)을 포함해 20위 이내 진입이 세 번 뿐이었다.

그러던 김지현은 지난 19일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며 이번 시즌 KLPGA투어 판도를 뒤흔들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이번 우승은 김지현에게 단순한 1승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김지현은 두산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우승을 통해 2가지 숙제를 해결했다.

취약점이던 중거리 퍼트와 가라앉았던 자신감이다.

중거리 퍼트 성공률이 떨어지는 건 김지현의 오랜 숙제다.

김지현은 샷이 아주 정확하다. 드라이버를 쳤다 하면 대부분 페어웨이에 떨어지고 아이언샷은 어김없이 그린에 볼을 올린다.

그는 2017년 그린 적중률 1위, 지난해 5위였다. 올해도 23일 현재 9위에 올라있다.

김지현의 아이언샷 정확도는 수치로 나타나는 그린 적중률보다 훨씬 높다. 아이언으로 쳐서 핀에 가장 가깝게 떨구는 선수를 꼽으라면 전문가 대부분 김지현을 지목한다.

스핀양이 많아 딱딱하고 빠른 그린에서도 부드럽게 내려앉는 아이언샷을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여자 선수 가운데 한명이 김지현이다.

이런 명품 아이언샷은 그린 플레이 탓에 빛을 잃곤 했다.

김지현은 3승을 올리면서 상금랭킹 2위를 했던 2017년에 평균 퍼트 74위(31.01개)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103위(31.4개)까지 내려갔다.

아이언샷이 정확한 김지현은 누구보다 버디 기회를 많이 만들지만 5~7m 거리 퍼트 성공률이 낮은 탓에 경기당 버디는 정상급 선수치고는 너무 낮았다.

그린 적중률 1위였던 2017년에도 그는 경기당 버디는 9위(3.51개)에 그쳤고 그린 적중률 5위였던 작년에는 26위(3.13개)까지 밀렸다.

올해도 그린 적중률은 9위지만 경기당 버디는 31위(2.88개)로 처져 있다.

그린이 빠르고 단단하기로 악명 높은 춘천 라데나 골프클럽에서 열린 두산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에서 김지현이 우승했다는 건 필요할 때 버디 퍼트를 넣었다는 뜻이다.

김지현은 결승에서 14번 홀까지 6개의 버디를 몰아쳐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몹시 어려운 슬라이스 라인의 5m 버디 퍼트도 집어넣었다.

'퍼트 귀신' 박인비(31)와 맞붙은 16강전에서도 김지현은 4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조정민(24)과 8강전에서 잡아낸 버디도 5개였다.

김지현을 오랫동안 지도해온 안성현 코치는 "중거리 퍼트가 약하다는 사실은 김지현 자신도 잘 아는 취약점이라 이번 시즌을 앞두고 겨울훈련에서 특별히 공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미국에서 치른 겨울훈련 동안 김지현은 하루 3시간은 그린에서 퍼터와 씨름했다.

안 코치는 "퍼트를 못 하는 선수는 백스윙과 폴로스윙이 다 작다. 자신이 없으니 스트로크가 위축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라면서 "김지현에게는 연습할 때 백스윙도 크게, 폴로스윙도 크게 하도록 권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에 퍼트 스트로크 동작에 변화를 준 것도 버디 퍼트 성공률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퍼트하기 전에 퍼터 헤드를 목표 방향으로 살짝 미는 듯한 동작을 새로 추가했다.

시즌 중에도 퍼트 연습에 소홀하지 않았다. 대회 중에도 하루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은 꼭 퍼트 연습에 할애했다.

퍼트가 살아난 것은 자신감 회복으로 이어졌다.

김지현은 최고의 시즌이었던 2017년에 이어 2018년 시즌을 치르면서 성적이 나지 않자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자신감 하락으로 자존감까지 덩달아 떨어지고 이는 그린 플레이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혔다.

이를 이번 두산 매치 플레이 챔피언십 우승으로 말끔하게 씻어낸 셈이다.

24일 개막하는 E1 채리티 오픈은 김지현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다.

대회가 열리는 경기도 이천 사우스 스프링스 컨트리클럽은 그린의 굴곡이 심하다.

이곳에서도 김지현이 5m 안팎의 버디 기회를 자주 살려낸다면 이번 시즌 KLPGA투어는 한층 더 흥미진진해질 전망이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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