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영혼 보내기' 운동 놓고 갑론을박

입력 2019-05-20 11:02
극장가 '영혼 보내기' 운동 놓고 갑론을박

"적극적 소비·응원 행위" vs "시장질서 교란"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최근 극장가에 퍼진 '영혼 보내기' 운동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영혼 보내기는 극장에 가지 않고, 돈을 주고 좌석을 예매하는 행위를 뜻한다. 영화를 이미 봤거나, 사정상 못갈 경우 영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쓴다.

티켓을 살 때는 주로 상영관 맨 앞자리나 구석자리 등 인기가 없는 좌석을 구매해 다른 관객에 대한 피해를 줄인다.

이를 놓고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소비 행위이자, 새로운 응원 문화라는 의견과 시장질서 왜곡 행위라는 반론이 나온다.

영혼 보내기 운동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걸캅스'가 개봉하면서부터.



여성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이유 등으로 개봉 전부터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조롱 섞인 악플에 시달렸고,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도 평점 테러를 당했다.

그러나 지난 9일 개봉 이후 꾸준히 박스오피스 3위권을 유지하며 19일 기준 누적 관객 123만명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은 약 180만명이다.

이런 약진은 여성 관객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다. CGV 관객 성별 분포를 보면 '걸캅스' 여성 비중은 74%로, 남성 비율(26%)을 압도한다. 남성과 여성 비율이 51%대 49%로 비슷한 '악인전'과 대조를 이룬다.

여성 관객들은 '걸캅스'가 우리 사회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점에 공감하며 여성 영화 발전 차원에서 영혼 보내기 운동도 펼친다. 한 누리꾼은 "'걸캅스' 개봉 첫날 조조 우대로 8명을 예약해 보냈다"며 인증샷을 올렸다.



사실 영혼 보내기 움직임은 지난해 10월 '미쓰백' 개봉 때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미쓰백'은 아동학대와 상처받은 여성 간 연대를 다룬 작품으로, 한지민의 열연으로 호평받았다.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3위로 출발하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N차 관람'과 영혼 보내기 운동이 이어지면서 최종 72만명을 동원, 손익분기점 (70만명)을 넘겼다.

이외에 영화 '허스토리'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도 영혼 보내기 대상이 됐다. '미쓰백'은 상업영화로 분류됐지만 독립영화 성격이 강한 반면, '걸캅스'는 전형적인 상업 오락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이슈 중심에 선 것으로 보인다.

영혼 보내기 운동에 대해선 다양한 시선이 있다. 관객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 한 방법이자, 새로운 문화운동 일환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화계 관계자는 "본인이 응원하는 영화에 기부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유독 여성 중심 영화가 흥행이 잘 안되고, 잘 만들어지지도 않다"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 시장을 보존하려는 방어 활동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장은 "과거 자사 영화를 띄우기 위해 예매권을 대량 배포하는 차원이 아니라, 여성 영화에 대해 여성들이 자발적 지지를 보내는 일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움직임을 놓고도 논란이 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심각한 갈등 국면에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걸캅스'는 최근 페미니즘 분위기와 맞물려 주목받는 것 같다"며 "영혼 보내기도 영화를 지지하는 일부 관객의 사회적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한 관객은 "극장 관람의 재미 중 하나가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같이 보는 것인데, 예매 때와는 달리 관이 텅텅 비어있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의사 표현의 한 방법으로서 의미 있는 시도이지만, 실질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강 평론가는 "실질적인 문화적 영향력은 단순히 표 판매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입소문이 나고, 영화에 관해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커진다"면서 "그런 영향력은 허수가 아니라 실수(실관람객)를 창조할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화 사이트에는 "영혼보내기 운동으로 흥행한 영화라고 알려져서 오히려 반감을 갖게 한다" 등 역효과를 우려하는 글도 보인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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