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인생 내공으로 다진 뿌리 깊고 단단한 삶의 철학
이근후 교수,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펴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인생의 절반쯤에 이르러 사람들은 누구나 삶의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지금까지 성취와 업적, 책임과 의무 위주로 삶을 꾸려 왔다면, 이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 가치 있는 삶에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올해로 85세가 된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50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인 그는 신간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통해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는 일, 자아, 인간관계 등의 문제에 대해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조언을 건넨다.
이 책에는 죽음의 위기를 몇 차례 넘기고 갖가지 병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겠다는 노학자의 다짐이 40가지 철학적 통찰로 실렸다. 저자는 2013년에 나와 40만 부가 판매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등 20여 종의 책을 지난 35년간 펴낸 바 있다.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굴곡의 삶을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때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고등학교 때는 아버지의 타계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단칸방을 전전해야 했다. 대학 시절에는 4·19 시위와 5·16 반대시위에 참여해 감옥 생활을 하는 바람에 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지독한 생활고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인생에는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오히려 삶은 예기치 않은 시련에 크게 흔들림을 알게 됐다. 자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시련이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회복된다는 사실 또한 깨닫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온 것이다.
그는 공자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림)을 좌우명처럼 새기고 산다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한다. 사소한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 얼핏 당연한 말 같지만 여기에는 아프고 힘들었던 삶의 그림자가 속 깊이 드리워져 있다.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상처도 상처려니와 인생 후반 들어서 건강 상태가 무척 나빠졌다.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당뇨와 고혈압, 허리디스크, 관상동맥협착 등 일곱 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다. 게다가 4년 전에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구르는 바람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의 인생 지혜는 이런 고충의 과정이 안겨준 값진 선물이랄까. 자력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인생의 시련이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회복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이는 다음과 같은 고(故) 신영복의 조언과 일맥상통한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돼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으로 인해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교수 역시 사소한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며 그런 즐거움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자는 것. 이것이야말로 남들이 보기에 특별한 인생을 산 저자가 진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던 진정한 이유란다.
그러면서 인생 후배들에게 "더이상 불필요한 일과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말고, 이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챙기면서 살라"고 조언한다.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나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마음껏 한번 찾아보라. 사소한 기쁨을 잃지 않는 한, 절대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다."
더불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락하기를 미루지 말고 자주 만날 것, 죽도록 일만 했다고 후회하기 전에 열심히 일한 자신의 노고를 인정할 것, 다 큰 자식은 되도록 빨리 독립시킬 것,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더 많은 대화를 나눌 것,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차근차근 마련할 것, 지금까지 살아준 배우자에게 감사할 것 등도 적극 권유한다.
반세기 동안 대학에서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친 저자는 퇴임 후에도 병원을 개원하고,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운영하며, 30년 넘게 네팔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등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 76세 때는 고려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 4년간 문화학을 공부한 뒤 최고령 졸업생이자 문화학과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메이븐 펴냄. 284쪽. 1만5천원.
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