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총수 전횡'에 경영권 박탈로 맞선 대한항공 '주주혁명'

입력 2019-03-27 14:54
수정 2019-03-27 14:55
[연합시론] '총수 전횡'에 경영권 박탈로 맞선 대한항공 '주주혁명'



(서울=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주총에서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됐다. 1999년 아버지인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에 오른 지 20년 만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전날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의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국내 대기업의 총수가 국민연금의 반대로 경영권을 잃은 첫 사례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대기업 총수의 경영권 박탈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현실화하면서 경영계에 미칠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정관 규정상 특별결의 대상인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 안은 주총 참석자의 3분의 2(66.7%)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가결된다. 하지만 64.1%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쳐 부결됐다. 결국 조 회장은 주주들의 손에 밀려난 사상 첫 대기업 총수가 됐다. 사실 연임 안 부결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대한항공 주주 지분은 조 회장과 한진칼 등 특수관계인 33.35%, 2대 주주인 국민연금 11.56%, 외국인 20.50%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 회장이 연임하려면 외국인과 소액주주로부터 33.32% 이상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해야 하지만 국민연금 외에도 주요 의결권자문회사마저 반대에 나서며 대한항공이 이를 뚫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조 회장 연임 부결의 키워드는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이 두 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조 회장이 여기에 해당하는 이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회장 일가가 '땅콩 회항 사건'이나 '물컵 갑질'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둘째치고 조 회장 자신도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196억원의 통행세를 수수하고 회삿돈으로 자신의 형사사건 변호사 비용을 지출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한항공 주총 결과가 시사하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아무리 재벌기업 총수라 하더라도 국민과 주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이 주인인 국민연금과 주주가치를 우선시하는 외국인, 소액주주들이 총수의 잘못된 경영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리 기업이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주주가치를 최우선시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긍정적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경영권은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잘못하면 언제든지 내놓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이번 주총 결과가 경영계에 미치는 파장은 꽤 클 것 같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경영권 불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의 반대 의결권 행사 결정 과정에서 치열한 논란이 있었던 것도 바탕에는 그런 우려가 깔려 있다. 국민연금은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때는 이러한 우려까지도 생각해 이념이나 정치적 시각을 배제하고 오로지 국민들이 맡긴 돈의 장기수익률 제고 관점에서 신중하게 결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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