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한일관계 악화 멈추게 할 외교역량 발휘하길

입력 2019-03-26 15:01
[연합시론] 한일관계 악화 멈추게 할 외교역량 발휘하길

(서울=연합뉴스) 대전지법이 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의 특허권·상표권을 대상으로 낸 압류명령 신청을 지난 22일 받아들였다고 한다. 압류 채권액은 8억원가량이다. 지난 1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의 신일철주금 주식 압류 결정에 이어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또 다른 악재가 등장한 셈이다. 악화일로인 한일관계가 돌파구를 좀체 찾지 못하는데 악재만 계속 불거지니 답답해진다.

일본 정부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5일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구체적 조치를 하지 않고, 원고 측에 의한 압류가 진행되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안에선 대한 보복 차원에서 고율 관세 부과, 송금 및 비자 제한, 특정 물질 수출 제한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일본이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선 법원의 후속 판단에 일일이 흥분하는 것은 지나쳐 보이지만, 관계 개선 차원에서 일본 측 불만도 들어봐야 한다. 일본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한국 내 징용 피해자들의 유사 소송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일본기업에 천문학적 배상액이 부과되는 사태라고 한다. 민변 등이 광주·전남 지역에서 징용 피해 집단소송 참여 신청을 받기 시작한 25일 하루에만 수십명이 참여를 신청했다고 하니 일본 입장에선 기우만은 아니다. 한일관계가 과거사에 또 발목이 묶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일관계는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관계 분리'라는 문재인 정부의 투트랙 대일 접근 원칙이 무색할 만큼 나빠진 상태다. 중국과 일본이 경제협력을 부쩍 강화하는 최근 상황과 비교하면 안타까울 정도다. 중일 간에도 역사 문제 등 악재가 쌓여있지만, 4월에 고위급 경제회담을 열기로 하는 등 양국이 경제를 앞세워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5월에 열릴 예정이던 한일경제인회의가 9월로 연기된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중 관계도 박근혜 정부 시절 빚어진 '사드 갈등'의 여파가 완전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문제로 신경전까지 벌였다. 이러다 한·중·일 사이에 우리만 외톨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한일관계 현실을 대하면 우리 외교부의 존재감이 희미해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한일관계를 이대로 둬서는 곤란하다. 외교부는 한일 간 현안으로 부상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일본의 우려를 덜어줄 수 있도록 외교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역대 정부도 일본 정부처럼 징용 배상 문제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종결된 것으로 간주해왔다는 점에서다. 국내 소재 일본기업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일선 법원의 판단이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외교부는 일본이 이해하고 납득할만한 외교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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