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채무없다' 소송 각하…응소했어도 소멸시효중단 안돼"
"본소 각하되면 응소는 '재판외 최고' 불과"…'시효중단' 판단 2심 다시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채무가 없다는 상대방의 소송에 '채권이 존재한다'며 적극적으로 반박 답변서를 내는 등 응소를 했더라도 해당 소송이 위법해 각하됐다면 소송제기에 의한 채권 소멸시효 중단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채무자가 낸 소송에 채권자가 응소하면 '적극적인 권리행사'로 인정돼 채권 소멸시효 중단효과가 발생하는데, 소송이 요건 미비로 각하된 경우에는 응소 자체도 각하된 것으로 간주돼 소멸시효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취지여서 채권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생산설비정보화시스템 개발업체인 A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가 A사가 낸 소송에 응소해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했으나 그 권리 주장에 대한 판단이 없이 소송이 각하됐으므로 국가의 응소에는 재판외 최고(催告·채권을 주장하는 행위) 효과만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의 응소로 채권의 소멸시효 중단 효과가 발생했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은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응소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려면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적극적인 권리행사를 해야 하는데, 통상 채무자가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낸 소송에 채권자가 응소하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간주해 소멸시효 중단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법원의 각하결정으로 채무자가 낸 소송이 없었던 것으로 될 경우에는 채권자의 응소도 없었던 것으로 평가돼 소멸시효 중단효과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단의 요지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정보화사업 지원을 받던 A사는 2010년 진흥원이 'A사의 사업실패에 따라 지원계약 해지됐다'며 지원금을 반환하라고 통보하자 반환통보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다. 이에 진흥원도 답변서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응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진흥원의 반환통보는 행정청의 행정처분이 아니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며 각하결정했다.
이에 A사는 2015년 진흥원을 상대로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번에도 '소송 상대방이 진흥원이 아니라 국가'라며 또 다시 각하결정을 내렸다.
A사는 2017년 국가를 상대로 다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면서 "2010년 채무가 발생한 후 5년이 지나 채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진흥원이 A사의 소송에 두 차례 응소하면서 채권 소멸시효가 중단됐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대법원은 "본 소송이 각하된 경우에는 응소도 '재판상 청구'라는 성질을 잃게 된다"는 취지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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