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삼년산성 입구 느티나무 107그루 처리 놓고 '고민 고민'
"농사 피해·도로 파손" vs "그늘·운치 주는 관광자원"
'탁상행정' 지적에 주춤한 보은군 "매각 못 하면 베어야"
(보은=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시가지에서 삼년산성(三年山城·사적 제235호)으로 이어진 길은 느티나무 가로수가 장관이다.
600여m 구간에 아름드리나무 107그루가 빼곡히 늘어서 여름이면 울창한 숲 터널을 이룬다.
1999년 심어진 이 느티나무들은 수령 20년을 넘기면서 밑동 지름이 40∼50㎝로 굵어진 상태다.
산책하는 시민이나 운전자한테는 시원한 그늘과 운치를 선사하는 고마운 존재지만, 농민들이 보는 시각은 다르다.
주변 논밭까지 뿌리가 뻗고, 짙은 그늘이 만들어지면서 눈엣가시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길 바로 옆에서 대추 농사를 짓는 A씨는 "느티나무 뿌리가 10여m 떨어진 밭까지 침투해 농작물을 죽인다"며 "그늘과 낙엽 때문에 생기는 피해도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급기야 농민들은 지난해 11월 이 구간 가로수를 모두 제거해 달라는 민원을 냈고, 보은군은 고심 끝에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나무뿌리가 굵어지면서 아스팔트나 인도 블록을 들뜨게 하는 등 도로 시설물을 파손하는 것도 벌목에 힘이 실린 이유다.
하지만 이 결정은 곧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온라인 카페 등을 중심으로 "관광자원이 된 가로수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지역 언론도 가세해 벌목 결정을 탁상행정으로 몰아붙였다.
기세가 눌린 군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벌목 계획을 접었다. 대신 농작물 피해가 없도록 다른 곳에 옮겨심거나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후 군은 청주시에 무상 제공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그루당 150만원에 이르는 이식비용이 문제가 됐다.
군은 공공자산 처분 시스템인 '온비드'를 통한 매각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평가한 나무 가격은 총490만원이다.
여기에 나무를 옮길 경우 인도 블록과 도로 경계석 등을 재설치하는 조건도 따라붙었다.
군은 이달 20일까지 응찰자를 기다린다는 입장이지만, 복구비까지 수 억원을 부담할 응찰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식이나 매각이 불발될 경우 이곳 나무들은 다시 벌목될 가능성이 크다.
군 관계자는 16일 "느티나무는 20∼30m 높이로 자라는 거목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농작물과 도로 시설물 피해가 늘 것"이라며 "매각과 더불어 백방으로 수요처를 찾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다시 벌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작물 피해를 막으려면 늦어도 다음 달까지 이식이든 벌목이든 이뤄져야 한다"며 "사회단체와 주민들도 합리적인 처리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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