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전쟁…"진짜 원인은 인간의 지능"

입력 2019-03-07 10:01
끊이지 않는 전쟁…"진짜 원인은 인간의 지능"

게르하르트 슈타군 '전쟁과 평화의 역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인류는 지구라는 우주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에 승객들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우주의 심연 곳곳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주는 사실 생명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우주선을 생명에 적대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전쟁과 평화의 역사' 저자 게르하르트 슈타군은 책 들머리에서 이같이 말하며, 그런데도 "왜 세상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비극적이게도 지구라는 우주선에는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생각들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선을 잘 보존하고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 파괴하고 망치는 데 혈안이 된 한심한 승객들. 이들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고 동족을 말살하려 한다. '전쟁'이라는 잔혹 행위를 통해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간은 자신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전쟁을 통해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짓거리들을 저질러 왔다"며 "전쟁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전쟁은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파괴 행위다"고 탄식한다.



물론 투쟁과 살생은 자연에 주어진 숙명이다.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고사는데, 이는 창조의 기본 법칙이기도 하다. 투쟁이 자연 어디나 널려 있는 현상이기에 자연은 다양한 종에게 다양한 공격 무기와 방어 무기를 선사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 하나는 같은 종끼리는 좀처럼 싸우거나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 보기 드문 예외가 있다면 바로 인간이다.

전쟁에 의해 평화가 멈추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이라는 정상적 상태가 평화에 의해 잠시 그치는 것뿐일까?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저 평화롭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반목과 갈등이 잦아든 그 시기에 각국은 국방력을 강화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등 향후의 전쟁에 대비한다.

이 책은 인간의 호전성이 타고난 본성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투쟁부터 살펴본다. 그리고 세계사 흐름을 바꾼 전쟁들이 일어난 원인을 분석하며 전쟁이 인간의 가치관을 어떻게 바꿨는지 밝힌다. 나아가 오늘날 내전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설명한다.

맹수와 비교하면 인간은 긴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 같은 자연의 '무기'가 전혀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자신을 노리는 동물들과 싸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투석기, 투창, 화살 등의 무기를 개발해냈다. 이렇다 할 태생적 무기가 없는 데다 속도마저 아주 느린 편이던 인간에게 생물학적 단점을 극복하게 해준 건 커다란 뇌였다. 뛰어난 지능 덕분에 지구의 정복자로 굳건히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무기를 거듭 만든 인간은 이종 살상에 그치지 않고 동종 상잔의 전쟁을 일상화하다시피 하며 신비로운 우주선과 같은 지구를 약육강식의 싸움터로 만들어버렸다. 인간의 강자는 전쟁을 성전으로 합리화하며 자신의 무자비한 약탈과 잔혹성을 정당화했다. 이를테면 인간 지능은 축복이자 저주다.

저자는 '왜 교황은 전쟁을 부르짖었는가'라는 대목에서 "종교의 사제들은 전사들의 무기에 축복을 내려주었고,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즉시 천국에 들 것이라고 선동했다"면서 "신이 자기편이라고 믿는 군인들이 자신의 행동과 범죄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특히 중세에 일어난 전쟁은 대부분 '종교'가 이유였다.

전쟁을 옹호하는 무리는 학문적 성과를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실로 삼기도 했다. 예컨대 다윈의 진화론과 월리스의 적자생존 이론은 강대국과 스스로 뛰어나다고 믿는 민족이 다른 나라와 민족을 정복하는 훌륭한 이유가 됐다는 것.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사라진다는 사회진화론을 인간 세계에 그대로 적용했다.

유럽의 전통적 기사도 정신 역시 한몫을 한다. 같은 기사 계급끼리는 예를 다해 싸우지만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신분에게는 무자비한 속성을 보이게 된다. 유럽 문명국가들이 자기끼리는 사전에 맞은 협정에 따라 전쟁의 예를 지킬지라도 열등한 존재로 분류한 민족에 대해서는 잔인한 방식으로 정복해버리는데 근대 열강들이 식민지 전쟁을 일으키면서 보인 잔혹성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전쟁은 근대와 현대로 오면서 전면전 양상을 띠었다. 식민지 전쟁, 내전, 테러 등으로 모든 파괴 세력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군인은 물론 민간에까지 무자비한 살육과 파괴의 만행이 이뤄졌으나 죄의식은 거꾸로 크게 둔감해졌다. 기관총, 화염 방사기, 장갑차, 폭격기, 잠수함, 지뢰, 독가스와 같은 고도의 기술력이 바탕이 된 무기가 등장하며 이런 현상은 당연한 일이 되다시피 했다.

참혹한 전쟁이 강자를 위한 '산업'이 돼버린 한 오늘날, 전쟁의 역사를 끊고 평화의 역사를 만들 순 없을까? 저자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그러기에 비극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전쟁의 참상을 배우는 것이 바로 평화에 대한 공부의 첫걸음이라고 덧붙인다.

"'왜 전쟁을 하는가'라는 물음에 궁극의 대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라도 인간에 내재한 전쟁의 요인을 탐구하고, 전쟁을 인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악행으로, 또 피할 수 있는 행위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만이 이런 바보 같은 짓거리를 멈출 수 있다."

이화북스 펴냄. 장혜경 옮김. 344쪽. 1만3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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