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문화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진핑은 대일통 후예"

입력 2019-02-24 10:04
"권력·문화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진핑은 대일통 후예"

'중국정치사상사' 20년간 번역한 장현근 용인대 교수

"중국학 기반 붕괴, 동양 정치사상사 관심 부족 안타까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대 춘추공양학자 동중서(董仲舒)에서 비롯된 사상인 대일통(大一統)의 후예입니다. 그는 권력뿐만 아니라 문화도 하나로 아우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약 20년간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고 총 4천52쪽 분량의 '중국정치사상사'(글항아리 펴냄·전 3권)를 출간한 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장현근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시진핑 체제를 정치사상사 관점으로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장 교수는 "중국에서는 공양학이 끊임없이 살아난다"며 "역사상 권력이 안정화하는 데 50∼70년이 걸리고 전성기가 120년 정도 이어지는 과정이 순환했는데, 국가가 안정되면 항상 최고 권력자인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대일통 사상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1996년에 출판된 '중국정치사상사'는 톈진 난카이(南開)대 교수로 활동한 중국 학자 류쩌화(劉澤華, 1935∼2018)가 제자들과 함께 중국 최초 통일국가인 진나라 이전부터 청나라까지 정치사상 흐름을 통사 형태로 정리한 역작이다.

중국 학계가 마오쩌둥 사상과 레닌·마르크스 사상에 경도돼 있던 시기에 정치사상사라는 학문을 개척한 류쩌화는 원전 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소외된 사상가도 발굴해 정치학자 샤오궁취안(蕭公權)이 1945년에 쓴 동명 서적과는 차별화한 책을 펴냈다.

장 교수는 "대만 유학을 마치고 1992년 귀국하면서 중국 정치사상사를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1997년 류쩌화 선생 책을 접한 뒤 정치학은 물론 철학과 역사학 연구자에게도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번역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번역은 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틈틈이 했다"면서 "번역 분량이 원고지 1만8천 매에 달하는데, 쌓아 올리면 내 키만큼 될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인용문과 원문을 하나하나 대조하고, 중국에서만 사용하는 어려운 개념어를 우리말로 옮기다 보니 번역 작업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면서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고 장 교수는 회고했다.

"한 페이지 번역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어요. 19세기 후반만 해도 조선이 중국학의 선두 주자였는데, 이후 사상적 교류가 사실상 120년 넘게 단절됐잖아요. 낯선 단어를 간명하게 옮기기 어려울 때 힘들었죠. 원문을 왜곡해서는 안 되고, 글맛도 살려야 하니까요."

장 교수는 중국 정치사상이 왕권의 절대화와 신성화를 추구하는 과정이었다고 본 저자 견해에 대해 "큰 맥락에서는 동의하지만, 신하들이 도덕적 제약을 가하며 왕권을 견제하려 한 점을 축소해서 바라본 듯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다양한 사상인 제자백가를 융합과 절충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점을 '중국정치사상사'의 미덕으로 꼽으면서도 제자백가 일파인 유가·도가·법가·묵가 등이 2천 년 넘게 중국 정치사상을 지배했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한나라 때는 지식을 중시하는 풍토가 있고 지식인의 수준이 전혀 낮지 않아서 독자적 사상을 성취했다"며 "유학만 해도 동중서에 이어 당나라 한유(韓愈), 송나라 주희(朱熹)가 각각 재해석한 성과를 내놓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류쩌화 선생은 기존 사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새로운 틀이 생긴다고 봤다"며 "중국사상의 축인 유교, 불교, 도교도 갈라지고 뭉치기를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정치사상사'는 사상을 철학이 아닌 정치학으로 풀이하다 보니 선입견과 배치되는 대목도 있다. 노장(老莊)사상을 제왕의 통치술로 보는 것이 일례다.

장 교수는 "무위(無爲)는 군주가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통치가 이뤄지도록 하라는 것을 뜻한다"며 "도가 사상을 탈정치적, 비정치적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논어를 정치학으로 해석한 책을 곧 발간할 계획인 장 교수는 '논쟁으로 본 중국 정치사상' 집필이 목표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국내에서 중국학의 기반이 거의 무너지고, 동양 정치사상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현실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인문학 저변 축소는 시대적 조류이지만, 학문은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장 교수는 "너도나도 중국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중국을 잘 알지 못한다"며 "정치학에서도 선거 결과를 예측하고 분석하기보다는 정치적 개념과 관념을 통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안정된 지식사회로 가려면 지적 수준이 높아져야 하고, 정치사상사 연구가 필수적"이라면서 "이상을 품지 않고서는 현실 비판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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