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베트남과 연락사무소 거쳐 수교…北과도 전례 따르나
연락사무소, 적대국과 수교前 '징검다리' 역할…美, 상응조치로 검토해 주목
北인사, 과거 "필요없다" 밝히기도…정상국가 과시 김정은 체제선 반길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라 제공할 상응조치의 하나로 연락관 교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이 과거 적대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던 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베트남, 쿠바, 리비아 등 한때 적대관계였던 국가들과 수교에 이르는 과정에서 연락사무소나 이익대표부가 '징검다리' 역할을 한 바 있어 북한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수교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20일 외교부에 따르면 연락사무소나 이익대표부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관계가 있는 두 나라가 정식 외교 관계를 맺기 전에 대화 채널로서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은 쿠바와 지난 2015년 7월 수교하기 전 38년간 이익대표부를 운영했다.
1959년 1월 쿠바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은 2년 뒤인 1961년 1월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완전히 단절했다. 이후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직접 소통' 창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77년 양국 수도에 이익대표부가 설치됐다.
중국과도 수교 전에 연락사무소를 먼저 설치했다.
미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뒤 국교 정상화와 관련한 현안을 막후 조정하기 위한 연락사무소를 1973년 5월 설치했고 6년 뒤인 1979년 1월 국교를 수립했다.
미국은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과도 연락사무소를 거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양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중국 영향력 견제, 국제적 고립탈피 및 경제재건 등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관계 개선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1995년 1월 연락사무소를 개설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미국이 핵을 포함한 대량파괴무기(WMD) 프로그램으로 갈등을 빚었던 리비아와 수교에 이른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리비아는 미국 등과의 물밑접촉 결과로 2003년 12월 자발적으로 WMD 프로그램 폐기를 선언했고, 미국은 이듬해 2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이익대표부를 개설했다.
그 직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이 시작되자 그해 6월에는 이익대표부가 연락사무소로 격상됐고, 리비아의 비핵화 조치가 완료된 뒤인 2006년 5월 대사관이 설치됐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이 이런 과정을 거쳐 외교 관계를 수립하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과거에도 북핵 협상 과정에서 연락사무소 개설은 비핵화의 상응 조치로 자주 등장했고 실제 합의문에 담긴 적도 있다.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한 1994년 제네바 합의에는 '쌍방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적시돼 있고, 실제 양측이 사무소 부지를 둘러볼 정도로 진척됐지만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당시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협상단의 미국 측 대표였던 린 터크 전 국무부 북한 담당관은 지난해 6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쓴 글에서 개인적 추측임을 전제로 북한 군부의 반대를 무산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북한과 미국 간 대화의 주된 창구가 됨으로써 판문점 북미 군사 채널을 우회해 군사문제들에 대해서까지 외교 채널이 관장하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저지에 나섰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당시 평양에 성조기가 나부끼는 상황이 부담스러워 연락사무소 개설에 소극적으로 나왔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북핵 6자회담이 한창이던 2007년 3월에는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연락사무소 개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연락사무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힌 적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에는 연락사무소에 대한 북측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적은 없다.
한편에선 김 위원장이 '정상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에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transi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