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립유공자 베델 손녀 "한국인, 할아버지 정신 느꼈으면"

입력 2018-12-23 18:26
[인터뷰] 독립유공자 베델 손녀 "한국인, 할아버지 정신 느꼈으면"

가족 보관하던 장식장과 사진첩, 엽서 등 한국 정부에 기증키로

"할머니, 한국 살던 때 좋아해…일본은 용서하지 않아"





(스폴딩[잉글랜드]=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우리 가족에게 귀중한 유품이지만 한국인들이 할아버지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을 생각했을 때 이를 기증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기증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할아버지의 정신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국 출신 독립운동가로 지난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Ernest Thomas Bethell·한국명 E.T 배설) 선생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 여사는 22일(현지시간) 자택을 방문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의 유품을 기증키로 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변했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베델 선생은 32세가 되던 1904년 데일리 크로니클 특별통신원으로 내한한 뒤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해 항일 언론투쟁을 전개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이날 블랙 여사를 만나 유품 기증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한편,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중 처음으로 보훈처가 제작한 명패를 전달했다.

블랙 여사는 피 보훈처장에게 장식장과 사진첩, 사진, 엽서 등 기증 유품에 대해 하나하나 자신의 가족과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했다.

다음은 블랙 여사와 일문일답.

-- 베델 선생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됐나.

▲ 어릴 때는 그냥 (평범한) 할아버지인 줄로만 알았다. 큰 업적을 이룬지 몰랐지만 성인이 되면서 알게 됐다. 베델 선생 연구를 위해 찾아온 한국인 학자 등과 할머니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 베델 선생은 어떤 분이라고 들었나.

▲ 할아버지는 매우 유쾌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했던 신사였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은 한국분들로 인한 줄이 1마일(1.6km)이나 이어졌다고 한다.

-- 이번에 기증하게 된 유품은 어떤 것들인가.

▲ 장식장은 할머니(메리 모드 베델 여사)가 1909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영국에 돌아오면서 가지고 온 것이다. 기차라서 장식장과 조각상 등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어릴 때 (남동생인) 토머스 오언 베델과 장식장을 닦고는 했다. 장식장이 영국에 온 지 110년만에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게 됐다. 장식장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를 때 TV 받침대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알게 된 뒤에는 소중하게 보관해왔다. 엽서는 할머니가 영국에 돌아오신 뒤에 지인 등으로부터 받은 것들이다.



-- 유품 기증 배경은.

▲ 물론 우리 가족에게 귀중한 유품이지만 한국인들이 할아버지에 감사해하는 마음을 생각했을 때 당연히 기증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 같다. 이번 기증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할아버지의 정신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오래됐고, 또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한국에서 잘 보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 할아버지의 마지막에 대해 들은 것이 있나.

▲ (사진을 보여주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머물렀던 호텔 사진이다. 호텔에 원해서 머무신 것이 아니라 (일제가) 할아버지를 감시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호텔에) 연금한 것이라고 들었다. 할아버지가 형을 사셨는데, 일찍 나오는 대신에 감시가 가능한 호텔에서 머무르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 할머니나 아버지에게서 할아버지와 한국에 관해 어떤 것을 들었나.

▲ 아버지(허버트 오언)는 할아버지에 대해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여덟살이었다. (베델 선생의 사진 한장을 보여주면서) 그러나 이 사진은 제가 어릴 때 아버지의 침대맡 탁자에 항상 놓여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매우 다정하신 분이었다. 할머니는 제가 태어났을 때 이미 고령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재혼하지 않고 혼자 아들을 키우면서) 편견 등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할머니는 한국에 살던 때를 좋아했고 한국 사람을 좋아했다고 했다. 어릴 때 종종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할머니는 그러나 (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본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역시 일본에서 무역상 등을 하면서 일본에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장식장 등을 잘 보존하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 한국에 방문 계획이 있나.

▲ (블랙 여사는 1995년 광복 50돌을 맞아 광복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2010년 광복 65주년에도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좋은 기억이 있다. 훌륭한 곳이었다. 내년 3월께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에) 다시 초청을 받았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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