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서 2천년전 풀 넣어 만든 점토벽 나왔다

입력 2018-11-28 16:43
수정 2018-11-28 16:57
해남서 2천년전 풀 넣어 만든 점토벽 나왔다

군곡리 패총 발굴조사…주거지 밀집 분포 양상 확인

"유적 하한 연대, 3세기서 5세기로 수정해야"



(해남=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인 해남 군곡리 패총(사적 제449호)에서 초본류를 넣어 만든 점토벽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목포대 박물관은 28일 전남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907번지 일원에서 진행한 발굴조사 성과를 점검하는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2천 년 전쯤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벽을 비롯해 각종 조개껍데기와 동물 뼈, 토기, 푸른색 유리구슬을 공개했다.

패총(貝塚)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가 무덤처럼 쌓여 형성된 유적으로, 해남 군곡리 패총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목포대 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이 조사했다.

이를 통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 사이에 제작한 각종 토기와 골각기(骨角器·뼈로 만든 도구)를 비롯해 중국 동전인 화천(貨泉), 일본 야요이계 토기가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해양고고학을 전공한 김건수 목포대 박물관장이 이번 조사의 최고 성과로 꼽은 점토벽은 불을 땐 소성(燒成)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에서 한꺼번에 나왔다.

김 관장은 "점토벽 강도를 높이기 위해 초본류를 넣는 것은 지금도 사용하는 기술"이라며 "건축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에 닿았기 때문에 점토벽이 그대로 남았다"며 "초본류를 넣었던 부분에는 홈이 팼다"고 덧붙였다.

김영훈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소성 유구는 철기시대 경질무문토기를 굽던 가마 자리로 보인다"며 "점토벽은 가마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는데, 패총에서 산업 활동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1980년대에도 발견된 복골(卜骨·점치는 데 사용한 뼈)과 골각기를 비롯해 굴·피조개·전복·소라 껍데기와 사슴·멧돼지 뼈, 민어·방어 가시, 바다거북 등 껍데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군곡리 패총의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제주도 현무암을 넣은 대형 항아리 조각도 출토됐다.

김 연구사는 "제주도에서 만든 항아리가 군곡리에 왔는지, 돌을 가져와 육지에서 토기를 제작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거지 유적 약 30기가 밀집 분포한 양상을 확인한 점도 이번 조사의 성과라고 역설했다.

김 연구사는 "구릉과 평지에서 삼국시대 주거지 유적을 확인했는데, 평지에는 주거지 수백 기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비록 무덤은 나오지 않았지만, 군곡리를 단순한 패총이 아니라 집단 취락이 있는 복합유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종래에는 군곡리 패총 조성 하한 연대를 기원후 3세기로 봤지만, 토기로 판단했을 때 기원후 5세기로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문회의에 참석한 은화수 국립나주박물관장은 "군곡리 패총이 국제 교류 거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며 "이제는 접안시설을 찾는 것이 과제"라고 강조했다.

최성락 목포대 교수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는 군곡리가 국제 기항지이자 중심지였으나, 4∼5세기에는 그 기능을 잃은 것 같다"며 "아직도 조사할 부분이 많다"고 조언했다.

김건수 관장은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 유적 내부 조사를 하지 못했다"며 "패총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적을 드러낼 보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명현관 해남군수는 "내년에는 군곡리 패총 종합정비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유적 활용을 위해 전시관 설립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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