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 "즐거우면서도 고민하게 하는 작품 쓰고 싶어요"

입력 2018-11-28 10:55
정세랑 작가 "즐거우면서도 고민하게 하는 작품 쓰고 싶어요"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지난해 '피프티피플'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정세랑(34) 작가가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창비)를 펴냈다.

데뷔한 지 8년 만에 첫 소설집이다.

'옥상에서 만나요'를 비롯해 총 아홉편의 작품을 묶은 이 소설집은 전작 '피프티 피플'의 묵직한 메시지와 '보건교사 안은영'의 경쾌한 상상력 등을 모두 담았다.

주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억압적인 가부장제, 경직되고 부당한 조직, 남성 중심적인 사회 등의 부조리를 다루면서 한편으로는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이제 내가 있는 옥상은 뛰어내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야. 더는 뛰어내리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너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는, 아마도 그 옥상에 자주 가겠지. (…) 밑면에 내가 방수 처리를 해서 붙여 놓은 편지와 비서를 발견할 수 있게.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니 부디 발견해줘,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너의 운명적 사랑을,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기이한 수단을."

정 작가는 2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첫 소설집이 나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지만, 한편으로는 화자의 무게 중심이 '나'라는 개인에서 좀 더 바깥세상으로 옮겨갔다는 느낌이 들어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이번 소설집을 평가했다.

실제로 한때 사회적인 소설을 잘 쓰지 않는다고 언급했던 정 작가는 최근작 대부분에서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뤘다.

'피프티피플'에는 가습기살균제, 층간소음, 성소수자 등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고, 이번 작품 또한 억압적인 가부장제, 외국인노동자 차별, 돌연사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 작가는 "변해가고 있다"며 "원래는 힘들고 지쳤을 때 위로받을 수 있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설을 쓰고 싶어 즐거움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사회적인 부분이 스며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요새는 사회적인 이슈를 담으면서도 사는 것이 힘든 독자들이 읽는 것조차 힘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너무 가볍게 쓰면 그냥 지나가 버릴 테고, 너무 진지하게 정면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읽기 부담스러울 테니 중간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한때 문학계 폐쇄성에 지쳐 문단을 떠날까도 고민했다는 정 작가는 지난해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았을 때 매우 놀랐다고 돌이켰다.

'떠나기 직전에 좀 더 있어 봐'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 작가는 "이질적인 작가가 나타났을 때 거론하지 않음으로써 벽을 만드는 부분들이 아직도 있다"며 "소설집이 늦어진 것도 문단에서 인정해주는 지면으로 데뷔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원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미투 운동'의 시초격인 문단계 성폭력 문제도 여전히 해결이 요원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많은 작가가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고 외부에서도 알고 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이 여전히 과거의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죠. 그 권력을 해체하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고, 결국 고인 물을 만들지 않게 주요 자리의 사람들이 계속 순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그는 젊은 평론가로부터 변화의 씨앗을 봤다며 "앞으로 올 사람을 기다리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기대했다.

정 작가의 다음 작품은 지난 세기의 이름이 사라진 여성 예술가에 관한 것으로, 장편으로 구상하고 있다.

에세이도 준비하고 있으나, 그 전에 가까운 친구들의 평가처럼 "괴상"하고 한국 문학에서 흔히 찾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은 이번 소설집을 독자들이 즐겁게 읽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어떤 단편들은 입구와 출구가 매우 분명하지만 어떤 단편들은 미로 같습니다. 모두가 읽었을 때 똑같은 답을 얻는 단편도 필요하지만,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 다른 출구로 나오는 미로 같고 설명되지 않는 글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껏 헤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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