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제주향토음식 명인 명맥 이은 고정순 소장

입력 2018-11-27 08:30
[사람들] 제주향토음식 명인 명맥 이은 고정순 소장

"내가 먹은 음식이 곧 내 몸…건강한 제주의 사계절 밥상 차릴 것"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음식이 곧 몸입니다. 제철 밭에서 나는 채소로 제주의 밥상을 정성껏 차리겠습니다."



제주향토음식 명인의 계보를 잇게 된 고정순(73) 제주향토음식연구소장은 2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결같은 각오를 밝혔다.

고 명인은 30년 넘게 제주산업정보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다 지난 2010년 정년퇴임을 한 뒤 곧바로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를 설립해 음식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고 명인이 제주향토음식의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자코모 모욜리 슬로푸드국제위원회 부회장 일행이 제주를 찾았다.

고 명인은 당시 '60년대 제주인의 밥상' 전시를 하면서 여름철 별미인 자리물회 요리 과정을 시연했다.

몸길이가 18cm 안팎까지 자라는 자리돔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리는 것 없이 모두 섭취할 수 있는 영양상으로 완전한 식품으로, 자리돔으로 만든 자리물회는 대표적 제주향토음식이다.

맛을 본 모욜리 부회장은 "완벽한 슬로푸드"라고 극찬했다.

용기를 얻은 고 명인은 이듬해 2005년 열린 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에 나가 '제주의 사계절 밥과 국, 사라져버린 제주의 보양식'이란 주제로 금상을 받았다.



이어 2011년에는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토대로 '추사 유배길 음식 상품 개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김치메밀묵, 더덕월과채, 두부퍼데기김치를 비롯해 봄-톨밥상, 여름-반지기밥상, 가을-조팝밥상, 겨울-놈삐밥상 등 계절에 따라 추사가 먹었을 것으로 보이는 소박한 제주의 밥상을 내놓아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세계 각 지역의 잊혀 가는 음식과 식재료들을 찾아내 관심을 이끌어 가는 국제민간기구 슬로푸드가 추진하는 '맛의 방주'에 전통 발효 음료인 '쉰다리'를 올리는 데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는 "슬로푸드 운동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듣자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제주 음식에 대한 열등감을 털어버리게 됐다"며 "제주 음식을 잘 다듬으면 세계인들로부터 관심을 끌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행사 때마다 제철음식을 활용한 제주만의 사계절 밥상을 선보였다.

봄·여름·가을·겨울 제철에 나는 식재료로 만든 만큼 몸에도 좋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슬로푸드이기 때문이다.

제주향토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음식을 만들면 만들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달고 맵고 짠 자극적인 맛에 길든 현대인들에게 제주 음식은 너무나 소박했다.

먹을 것이 차고 넘쳐 물질적인 풍요가 재앙이 된 현대인들. 비만, 당뇨,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젊은 세대에게 건강한 제주향토음식을 먹일 방도를 찾던 중 사찰음식의 대가 선재 스님을 만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고 명인은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양념이 과하지 않은 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찰음식과 제주향토음식은 공통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첫날 밍밍한 음식 맛에 거부감을 느꼈던 사람들도 5일째가 되면 '먹고 나서 속이 편안해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며 "'내가 먹은 음식의 결과물이 곧 내 몸'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의 이치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고 명인은 "명인으로서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체계적인 전시와 음식 개발을 통해 제주향토음식 보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먹어서 건강한 음식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눈으로 보기에도 좋은 오감을 만족하는 정갈한 음식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고급화'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b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