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가 문까지 막아섰는데"…KBO, 선 감독 사퇴에 뒷수습 고민

입력 2018-11-14 16:09
수정 2018-11-14 17:42
"총재가 문까지 막아섰는데"…KBO, 선 감독 사퇴에 뒷수습 고민

선동열 감독, 사퇴 기자회견문에서 총재에 대한 서운함 드러내

장윤호 사무총장 "사퇴 예상 못 해…총재의 진의가 아니라고 설명했는데"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국 야구 최초의 국가대표 전임감독이었던 선동열(55) 감독이 자진 사퇴하자, KBO도 충격에 빠졌다.

KBO 수장 정운찬 총재의 발언이 선 감독의 사퇴에 영향을 끼친 탓에, KBO는 더 난감하다.

선동열 감독이 14일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열고 퇴장한 뒤, 장윤호 KBO 사무총장이 취재진 앞에 섰다.

정운찬 총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윤호 사무총장은 "총재도 많이 놀라고 당황했다"고 설명했다.

선 감독은 하루 전인 13일 KBO에 연락해 "총재와 면담하고 싶다"고 전했다.

정운찬 총재는 14일 오후에 선 감독을 만났다. 선 감독은 이 자리에서 "국가대표 감독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장윤호 총장은 "총재와 저, KBO 전 직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라며 "총재가 '한국 야구를 위해서 도쿄올림픽까지는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선 감독을 만류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도 막고, 복도까지 나와 선 감독에게 '계속 대표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선 감독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선동열 "이제 때가 된 것 같다"…야구대표팀 감독 사임 / 연합뉴스 (Yonhapnews)

선 감독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대표 선발 과정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셌다.

"성적만 생각하다 보니 국민과 야구팬, 청년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병역 특례에 대한 시대적 흐름에 둔감했다"고 사과했지만,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10월 10일에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서 몇몇 국회의원의 질타도 받았다.

선 감독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에 맞서 소신껏 대답했지만, 정운찬 총재의 발언에는 충격을 받았다.



정운찬 총재는 "TV로 야구 경기를 본 건, 선 감독의 불찰"이라고 했고, 사견임을 밝히며 "국제대회가 잦지 않거나 대표 상비군이 없다면 전임감독은 필요치 않다"고 전임감독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정운찬 총재의 진심이 아니었다고 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국가대표 감독의 선수 선발 과정을 질타하고, 존재의 필요성까지 부정한 셈이었다.

선 감독은 사퇴 기자회견문에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됐다.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는다"고 썼다.



장윤호 총장은 "(선 감독이 자진사퇴를 고민하는지)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어 "총재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선 뒤인 10월 25일에 내가 선 감독을 만나 '총재의 진의는 그게 아니다. 발언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오해가 있었다. 당연히 도쿄올림픽까지 선 감독이 전임감독으로 대표팀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선 감독도 '당혹스럽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한국 야구를 걱정했고, (사퇴 의사 등)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장 총장은 "정말 안타깝다. 훌륭한 분을 이렇게 떠나보는 게 맞는지…"라고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대표팀 감독 문제 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야구는 내년 11월에 프리미어 12를 치른다.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이고, 한국이 예선을 유치하기도 했다.

당장 KBO는 프리미어 12를 준비할 대표팀 사령탑을 구해야 한다. KBO의 수장인 총재가 전임감독제를 반대한다고 공언한 터라, 차기 대표팀 감독을 임시직으로 뽑아야 할지,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까지 임기를 보장해야 할지도 새로 정할 수밖에 없다.

정운찬 총재는 11월 14일 야구회관에서 선 감독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 달 전인 10월 23일 국회에서는 선 감독을 전혀 감싸지 않았다.

선 감독은 오래 고민했지만, 결심이 서자 뒤를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뒷수습은 남은 KBO 실무진의 몫이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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