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에도 멈추지 않는 조각거장 실험…"나는 시인에 가까워"

입력 2018-11-04 12:00
수정 2018-11-05 20:20
일흔에도 멈추지 않는 조각거장 실험…"나는 시인에 가까워"

영국 손꼽히는 조각가 토니 크랙, 8일부터 우손갤러리 개인전

회전하는 원주형 작업인 '이성적 존재들' 중심 15점 출품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저물녘 고요한 만에 회오리가 일며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물기둥에 온 세상이 비친다. 착시를 일으키는 기둥 정체는 영국 미술가 토니 크랙(69) 조각이다. 2016년 여름 스웨덴 스톡홀름 유르고르덴에서 열린 크랙 개인전 풍경이다.

크랙은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다. 애니시 커푸어(64), 앤터니 곰리(68) 등과 함께 '뉴 브리티시 스컬프처'(New British Sculpture) 운동 주자로 꼽힌다.

그는 1970년대 잡동사니들을 접착제 없이 쌓아 올려 만든 반듯한 정육면체 '스택'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얀 정육면체로 상징되는, 당시 미술계를 뒤덮은 미니멀리즘을 향한 대찬 반격이었다. 폐플라스틱 파편을 바닥이나 벽에 늘어놓고 인체 등 형상을 만들어낸 작업 또한 화제를 모았다.

이렇게 폐기물을 쌓고 진열하던 크랙은 1990년대부터 콘크리트, 진흙, 돌, 석고, 청동, 유리, 나무, 스틸 등 다양한 재료 실험에 나섰다. 재료는 달라도 인간-물질, 문명-자연 관계를 고찰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작업이다.

그는 2011년 생존한 현대미술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아래에서 전시했다. 제43회 베네치아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터너상(1988)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상이 그를 호명한 것은 위상을 보여준다.



일흔에도 실험을 멈추지 않는 크랙 개인전이 8일 대구 중구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 개막한다. 석갤러리를 전신으로 하는 우손갤러리는 2012년 크랙 작업으로 개관한 바 있다.

김은아 우손갤러리 대표는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시 내용을 설명했다. 롤랑 헤기 전 프랑스 생테티엔 미술관장도 배석했다. 일정 조정으로 방한하지 못한 작가 요청으로, 30년 넘게 교우한 헤기 전 관장이 한국을 찾게 됐다.

우손 전시에는 '이성적 존재들'로 불리는 작품들 위주로 15점이 출품된다. 회전하는 원주형 작업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볼 때마다, 사람의 얼굴 형태가 생겼다가 없어졌다 하는 점이 특징이다.

우손 배포자료에 따르면 작가는 "우리는 구름에서도 식물에서도 얼굴을 발견한다"라면서 "당신이 작품에서 얼굴을 발견하고, 재료를 살피고, 얼굴 외 다른 형태들을 바라볼 때 조각 부피감을 특별하게 경험하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수직적이면서도 한껏 부풀어 오른 원주는 조형적으로 독특하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에 헤기 전 관장은 "크랙 작업이 재료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라면서 "가령 브론즈를 회전시켜 그 브론즈가 식물이라든가 다른 성장하는, 진화하는 존재처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크랙은 원래 화학을 전공하고 실험실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과학도였다. 과학이 현실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조각을 비롯한 예술은 그것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작가 생각이다.

헤기 전 관장은 이에 크랙이 "조각을 통해 많은 재료를 사용하고 연구하면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됐다기보다는 시인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크랙은 감성이 풍부해지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어떠한 물질을 사용해 작업하는 것이 단순히 물질적인 결과만 내는 것이 아니란 것이죠. 재료를 연구하는 것은 사람이며, 그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반응이 (물질적 결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시는 내년 2월 2일까지. 문의 ☎ 053-427-7736.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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