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평창의 영광…봅슬레이·스켈레톤의 서글픈 전지훈련

입력 2018-10-24 09:37
사라진 평창의 영광…봅슬레이·스켈레톤의 서글픈 전지훈련

슬라이딩센터 잠정 폐쇄로 훈련 차질…정부 예산지원 감소 '이중고'

정부 지원만 의존해 자생력 키우지 못한 연맹도 책임론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평창 슬라이딩센터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스켈레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아이언맨' 윤성빈(24)의 금빛 포효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훈련 시설조차 제대로 없었던 '썰매 종목' 종목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정상에 오른 윤성빈의 투혼은 '도전 정신' 그 자체였다.

여기에 남자 4인승 봅슬레이 대표팀도 기적 같은 은메달을 보태면서 한국은 단숨에 썰매 강국으로 올라섰다.

평창올림픽을 대비해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에 특별훈련지원비로 정부예산이 연간 10억원 정도 투입되고, 평창 슬라이딩센터도 완공돼 선수들이 마음껏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면서 메달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훈련할 곳이 없어 아스팔트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고, 외국에서는 봅슬레이를 빌려서 경기에 참가하던 힘겨웠던 과거를 이겨낸 보람이었다.

이런 가운데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24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캐나다 휘슬러 전지훈련을 떠난다. 윤성빈 등 간판급 선수들은 휘슬러에서 12월 라트비아에서 시작되는 월드컵 시리즈와 내년 2월 예정된 세계선수권대회 준비에 나선다.

하지만 전지훈련을 앞둔 대표팀 선수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대표팀은 올해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한 번도 훈련하지 못했다. 총 공사비만 1천141억을 들여 설립한 슬라이딩센터가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여서다.

강원도의회에 제출된 '강원도 동계스포츠경기장 운영관리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의 비용 추계서를 보면 슬라이딩센터의 관리 위탁비용에 매년 12억5천200만원 들어간다.

강원도는 관리비용 부담비율을 국비 75%, 도비 25%로 나눌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해왔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슬라이딩센터는 잠정 폐쇄됐다.

이 때문에 윤성빈을 비롯한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선수들은 훌륭한 시설을 눈앞에 두고도 활용을 못 하는 황당한 상황을 겪고 있다.

성연택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사무처장은 "슬라이딩센터의 운영 주체가 제대로 결정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연맹에서 운영비의 일부까지 부담하겠다고 제의했지만 여전히 공전 상태다. 이제 와서 상황을 조사해보겠다고 하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훈련장뿐만 아니라 대표팀은 재정적으로도 쪼들리는 상황이다.

평창올림픽 대비해 지원됐던 특별지원비가 끊기면서 대표팀 훈련 예산도 10억원대에서 2억원대로 줄었다. 대표팀, 상비군, 유망주, 코칭스태프까지 규모가 50여명에 이르다 보니 해외 전지훈련 비용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

성 사무처장은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표팀 규모가 커졌지만 예산이 줄어 장비 등을 유지하고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라며 "해외 전지훈련 한 차례 나가는 데 비용이 5억~7억원 정도 소요된다. 특히 봅슬레이 운송비만 2억원 정도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평창올림픽을 대비해 봅슬레이를 제작했던 현대자동차도 새로운 썰매 제작을 접었다.

현대자동차는 2015년 10월 한국형 봅슬레이 제작에 나서 이듬해 대표팀에 전달했다. 대표팀은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봅슬레이와 라트비아산 썰매를 병용하며 올림픽을 준비하다 결국 라트비아산 봅슬레이를 타고 올림픽에 출전했다.

성 사무처장은 "현대자동차가 새 썰매 개발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기존에 제공한 썰매에 대한 업그레이드 작업은 계속해주기로 했다"라며 "현대자동차와는 다른 방향의 후원을 놓고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도 지금 상황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와 민간에서 많은 지원이 있었고,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의 인기가 높아졌을 때 제대로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아쉽기만 하다.



horn9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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