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 포섬 없는 팀매치, 팥앙금 없는 찐빵

입력 2018-10-11 05:05
수정 2018-10-11 10:33
[권훈의 골프산책] 포섬 없는 팀매치, 팥앙금 없는 찐빵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미국-유럽 골프 대항전 라이더컵에서 유럽은 포섬 8경기에서 6승을 올렸다. 유럽이 따낸 승점 17.5점 가운데 34%를 포섬 경기에서 얻어냈다.

특히 대회 첫날부터 유럽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던 건 오후에 치른 포섬 경기였다. 유럽은 첫날 오전에 열린 포볼 4경기에서 1승3패로 뒤졌지만 곧이어 치른 포섬 경기에서 4전 전승을 거둬 분위기를 확 바꿨다.

승부는 최종일 싱글 매치 플레이에서 갈렸지만, 이틀 동안 포섬 경기에서 주도권을 쥔 게 결정타였다.

1개 볼을 두 선수가 번갈아 치는 포섬은 팀 매치 경기의 꽃이다.

팀 매치 경기는 선수 개인의 경기력 못지않게 선수들끼리 팀워크가 뛰어나야 이길 수 있다.

팀워크는 선수들의 정신적 유대감을 뜻하기도 하지만, 포섬 경기에서는 더 나아가 정교한 팀 작전을 수립하고 정확하게 수행해내는 호흡이 아주 중요하다.

이 때문에 포섬 경기는 포볼보다 몇십배 더 차원이 높다고들 한다.

장타를 치지만 샷이 다소 불안정한 선수, 비거리는 짧지만 샷이 정교한 선수, 퍼트를 잘하지만 쇼트게임이 기복이 심한 선수, 아이언샷은 자주 흔들리지만 쇼트게임이 좋은 선수 등 다양한 특징을 지닌 선수를 놓고 짝을 짓는 것부터가 고차원 방정식이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이 쓰는 볼도 고려해야 하니 더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선수의 성격도 경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담한 선수와 소심한 선수가 있고, 자기표현이 강하고 분명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선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고려 사항을 토대로 팀을 짜고 작전을 수립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경기에 나서면 선수들의 심리적 부담감도 엄청나다.

실수하면 바로 파트너가 만회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는다. 좋은 샷을 쳤는데 파트너가 실수하면 화가 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참아야 한다. 파트너를 믿지 못해 무리한 샷을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포섬 경기는 변수가 많고 이변도 많다. 객관적으로 경기력에서 뒤지는 두 명이 기량이 더 나은 두 선수를 꺾는 경우도 자주 일어나는 게 포섬 경기다.

그만큼 보는 재미가 크다.

포볼 경기도 팀워크와 작전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포섬 경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라이더컵, 프레지던츠컵, 그리고 솔하임컵 등에서 짜릿한 승부가 연출되는 이면에는 포섬 경기의 마력이 숨어 있다.

한국의 우승으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8개국 국가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모처럼 국내 팬들에게 팀 매치 경기의 쫄깃쫄깃한 재미를 안겨줬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는 포볼과 싱글매치 등 2가지 방식뿐 포섬 경기가 없었다.

포볼과 싱글 매치만으로도 성공적인 흥행 성과를 거뒀으나 포섬 경기까지 치렀다면 대회는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왜 포섬 경기를 하지 않을까.

8개국이 4명씩 참가해 우승팀을 가리는 현행 구조로는 포섬 경기까지 넣기는 무리라지만 포볼 대신 포섬 경기를 치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섬이 포볼보다 관전 재미가 더 크기 때문에 흥행에도 도움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포섬 경기를 하게 되면 대회 양상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포볼과 싱글 매치만 치르는 현행 방식은 선수들끼리 의논해서 짝을 지어 경기에 나서면 그만이지만 포섬 경기는 페어링과 작전 수립 등 선수들끼리 해결하기에는 너무 일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결국 각국 선수단에는 이런 역할을 맡을 단장이 있어야 하고 어쩌면 단장을 보좌할 인력까지 필요해진다는 얘기다. LPGA투어가 단독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이 대회에 출전하는 8개국 골프협회나 여자프로골프협회가 대회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 대회를 주관하는 LPGA투어는 대회 일정과 선수 선발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 여자프로골프협회와 충돌한 바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대회 운영을 독점하려는 LPGA투어의 속내가 포섬 경기 배제로 나타났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의심하고 있다.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이 명실상부한 여자 골프 국가대항전이 되려면 개선할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당장 다음 대회부터라도 포섬 경기를 치르는 게 답이다.

포섬 경기 없는 팀 매치는 팥앙금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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