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소리꾼' 장사익 "굽이굽이 인생을 곰삭힌 소리죠"
11월부터 전국투어…자화상 주제로 인생사 노래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소리꾼 장사익(69)의 인생사는 이미 대중에 '전설'처럼 자리매김했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상고를 졸업한 이후 보험회사 직원을 시작으로 가구점 점원, 독서실 운영, 전자회사 영업사원, 딸기 장수, 카센터 등 대략 열댓 개의 직업을 거쳐 마흔 중반에 가수로 늦깎이 데뷔했다.
이후 지금까지 8장을 음반을 내며 그는 '가장 한국적인 창법의 소리꾼'으로 우뚝 섰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른 것도 그다. 그의 음악은 대중가요와 재즈, 국악, 트로트 등 특정 장르로 구분하기 어렵다.
험난한 인생 고갯길을 돌고 돈 그의 소리에는 독특한 힘과 애수가 가득하다. 무명의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찔레꽃'은 그의 애끓는 듯한 특유의 창법을 잘 드러낸다. 그가 힘껏 노래하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목놓아 울었지" 부분에 이르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관객들이 많다.
최근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자신을 "촌놈"이라고 불렀다. "그 촌놈의 정서가 날 지탱하는 정서"라는 그는 인터뷰 내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따뜻한 차와 굵은 포도알을 권했다. 꾸밈없이 널찍한 자택 2층 거실 통유리로는 북한산과 인왕산이 그림같이 펼쳐졌다.
◇ "25년 빙 돌았지만…노래는 내 운명"
충남 홍성군 시골 마을 출신 장사익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안 해 본 일 없이 떠돌다가 45세 무렵 소리 길을 붙들게 됐다. 장사익은 "25년간 빙 돌아왔지만 결코 헛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로 무친 얼거리도 맛있지만, 푹 익힌 김치 맛은 또 다르잖아요. 요즘 가수들은 어릴 때 데뷔를 하고서 그 뒤에 인생을 배우지만, 저는 인생을 배운 뒤 가수가 됐어요. 누가 더 할 이야기가 많겠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슬프고 기쁘고 달고 짠 이야기를 노래하는 거예요. 굽이굽이 돌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인생을 곰 삭힌 소리, 된장 같은 소리를 내라는 운명이었던 것 같네요. 허허."
되돌아보면 먹고 살기 힘든 형편 탓에 가수의 길을 엄두 내지 못했을 뿐 노래를 향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학창 시절 웅변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5년간 산에 올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뱃심을 길렀고,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가서도 퇴근 후에는 낙원동 가요 학원에 다녔다. 그 힘으로 군대 생활도 31사단 문선대에서 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평탄치 않은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아마추어 국악 단체에 가입해 단소, 피리, 태평소 등을 익혔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웅변부터 군대 생활, 국악기 취미까지 노래라는 집을 짓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며 말했다.
"만일 낙원상가 근처에서 노래를 배우던 시절 가수가 됐으면 지금처럼 되지 못했을 거예요. 노래를 부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공력을 켜켜이 쌓을 수 있었죠."
가수로 데뷔한 계기도 극적이다. 틈틈이 국악기를 익힌 장사익은 농악대와 사물놀이패 등을 따라다니며 태평소를 불었는데, 정작 사람들은 그가 뒤풀이 때 뽑아내던 구성진 소리에 넋을 놓았다.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긴 그는 '딱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1994년 11월 신촌의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100석의 공연장을 이틀 동안 800명이 찾았다. 이듬해엔 '찔레꽃'이 담긴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을 냈다.
◇ 관객 폐부 찌르는 탁성…성대 수술 위기 겪기도
장사익의 노래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대중가요, 월드뮤직, 재즈, 국악 등이 묘하게 뒤섞였다. 한국적 서정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다. 토해내듯 부르는 그의 소리에는 박자도 따로 없다.
그는 "초반엔 전문가들이 '당신 장르가 뭐냐'면서 규정을 짓고 싶어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면서 "젓가락을 치면서, 울면서, 자연스럽게 부르는 노래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찔레꽃'도 그렇게 탄생한 곡 중에 하나다. 그는 우연히 집 앞 화단을 지나가다가 화려한 장미꽃 뒤에 초라하게 핀, 그러나 은은한 향기를 뿜는 찔레꽃을 보고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찔레꽃이 꼭 자신처럼 느껴졌다.
"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뒤에 숨어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렇게 눈물을 쏟아낸 뒤 그냥 가사가, 노래가 툭툭 튀어나왔죠. 마치 무당들이 접신하는 것 마냥요. 그 노래가 지금의 절 만들었죠."
그의 노래는 그래서 힘든 사람과 함께 한바탕 울어주는 노래고, 기쁜 사람과 함께 덩실덩실 춤추는 노래다.
그는 주로 시에 노래를 얹는 방식을 택해왔다. 자신을 "시 도둑놈"이라 말하기도 했다.
"시가 인생사와 세상살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니까요. 저는 거기에 곡조를 붙이고 감정을 담을 뿐이죠. 제가 그렇게 멋진 글을 지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안되니까 시인들의 시를 훔치고 있습니다.(웃음)"
그의 시 같고, 동화 같은 인생은 최근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16년 1월 성대에 혹이 발견돼 영영 노래를 못 부를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결과를 믿고 일주일 만에 수술을 결정했고, 음성 훈련과 재활 치료에 매달린 결과 복귀에 성공했다.
그는 "노래하는 제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인생 종반전 향해"…11월부터 '자화상7' 공연
그는 오는 11월부터 '자화상7' 공연으로 전국 투어를 한다. '자화상'은 윤동주 시에서, '7'은 칠 학년(70대)을 맞은 그의 나이에서 따왔다.
"우리의 인생과 비슷한 야구 경기가 9회전을 치르잖아요. 요즘 수명이 80~90세라고들 하니까, 제 나이도 어느덧 인생이란 경기의 종반전을 향하고 있는 셈이죠. 기력도 감각도 느슨해진 지금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노래를 하려 합니다."
그는 일흔 이후에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보살피고 싶다고 했다.
"이번 공연들을 준비하면서 많은 시인과 화가들이 쓰고 그린 자화상을 봤어요. 다들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더라고요.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만 봐도 그래요. 우물을 홀로 들여다보던 시인은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라고 말하거든요. 물론 시를 해석하는 방향이 다 다르겠지만 전 이 시에서 제가 보이더라고요. 힘들고 가엽고 부끄러운 제 인생이지만 남은 시간을 멋지게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어쩐지 미워졌던 우물 속 사나이'를 무대 위에 올린다. 1집 '하늘 가는 길' 발표 이후 그가 걸었던 노래 인생사를 선보인다.
프로그램은 주로 이번 가을 발매 예정인 9집 음반 수록곡들로 구성된다. 동명의 타이틀곡 윤동주의 '자화상'과 허영자 '감', 기형도 '엄마 걱정', 곽재구 '꽃길' 등 신곡을 비롯해 그만의 소리로 엮어낸 흘러간 가요들도 함께 올려진다.
그는 인생도, 공연도 결국 거울 같다고 말했다.
"내가 100으로 노래하면 관객도 100으로 들어주고, 1로 노래하면 1로 듣죠. 한 사람이든, 3천명이든 내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부르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아 후련해질 때까지 울고 웃는 거죠."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