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철 산 곳곳서 산악자전거-등산객 마찰…"차라리 전용로를"

입력 2018-10-01 07:15
단풍철 산 곳곳서 산악자전거-등산객 마찰…"차라리 전용로를"

모두 산 즐기면서도 서로 적대시…등산로서 충돌 땐 위험천만

"자전거 부딪힐까 조마조마" vs "죄인도 아닌데…자전거 이용도 보장해야"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서울이며 지방이며 가리지 않고 산을 찾아다니는 오모(59) 씨는 최근 주말을 맞아 경기도 광교산에 올랐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괴성을 내지르며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산악자전거 무리와 마주쳤다가 사고를 당할 뻔한 것이다. 질주하던 산악자전거는 어느새 사라졌고, 뒤따라오던 다른 산악자전거 일행과 등산객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두 사람의 언쟁은 결국 욕설과 삿대질로 이어졌다.

이날 오 씨는 하산할 때까지 등산로에서 적어도 세 번쯤은 산악자전거 일행을 마주쳤고 그때마다 혹여나 부딪칠까 봐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불편하기는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소리를 치거나 욕을 퍼붓는 등산객을 만날 때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어 답답하기만 하다. 마치 범죄자를 바라보는 양 흘겨보는 등산객 시선도 부담스럽다.

한국산악자전거연맹 노상규 경기이사는 "연맹 측에서는 심판이나 임원진을 통해서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에게 등산객이 많은 동네 산은 이용을 자제해달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매번 지방까지 갈 수 없다 보니 이런 갈등이 빚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산악자전거 동호인 중에는 정해진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등산객 역시 새로운 길을 찾아가다가 마주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는 게 노 이사의 설명이다.

노 이사는 "등산로를 걷는 사람이나,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모두 산을 좋아하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며 "등산객은 이쪽을, 산악자전거는 저쪽을 이용하라고 구역을 정해놓고 양측 모두 산을 즐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단풍철을 맞아 산을 찾는 행락객이 많아지는 가을이면 이처럼 등산객과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곤 한다. 양측 모두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다는 마음으로 산에 왔지만, 서로서로 불편해하며 외려 스트레스만 받고 돌아가기도 한다.

국립공원은 자전거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도립공원은 지방자치단체 재량에 따라 자전거 출입 여부를 정하고 여타 공원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등산객도, 자전거 이용객도 불만인 상황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과거 광교산뿐만 아니라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 법적 근거 없이 자전거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쳐 이를 거둬가는 일도 벌어졌다.

비단 산에서만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을 둘러볼 수 있는 자락길은 길이 완만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자전거 때문에 불편하다는 민원이 잇달아 결국 보행자전용길로 지정됐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서는 이러한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지자체가 일단 자전거 출입부터 막으려 하니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평소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직장인 이모(32) 씨는 "안전문제도 물론 중요하지만,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숨통도 틔워줘야 한다"며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불법도 아닌데 차라리 산에 자전거 길을 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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