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유호 실종 20년]①해적습격? 선상반란? 사기극?
선장 이하 승선원 14명 전원 행방 묘연
조달청 발주 알루미늄괴 싣고 오다가 실종
[편집자주: 오는 29일은 '텐유호 실종사건' 발생 20주년입니다. 1998년 9월 29일 말라카 해협에서 항해중이던 선박 텐유호와 선장·기관장 등 승선자 14명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까지 선원들의 생사 여부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 실체가 규명되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연합뉴스 탐사보도팀은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과 중국경찰망 자료 등 국내외 기관에서 단독 입수한 문건과 수사관, 실종자 가족, 해기사, 해운업 종사자, 해적신고센터장 등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4개국에서 만난 100여명의 증언을 토대로 재외국민 보호와 실종자 생사 확인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해상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23일부터 하루에 1∼2건씩 모두 10건을 송고할 예정입니다.]
(서울·부산·자카르타·싱가포르=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선상 살인 사건인가? 다국적 범죄조직의 사기극인가? 해적의 습격인가? 아니면 침몰인가?
일본 마쓰모토 기선이 소유한 파나마 선적의 2천660t급 선박 텐유호(MV Tenyu)는 대한민국 조달청이 발주한 알루미늄괴(塊)를 싣고 인도네시아 쿠알라항(港)(Kuala Tanjong)을 떠나 인천항을 향해 오던 중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말레이시아 사이의 '말라카 해협'에서 실종됐다. 20년 전의 일이다.
실종 직후 여러 나라의 해사기관들이 하늘과 바다와 항구에서 텐유호를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1998년 12월 하순에 원래 텐유호와 비슷하게 생긴 배가 '산에이-1'호라는 이름을 달고 중국의 한 항구에서 입항했고, 수사 결과 이 배가 원래 텐유호였으나 선명이 여러 차례 변조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선장 이하 승선원들은 전원 바뀌어 있었으며, 원래 텐유호에 타고 있던 승선원 14명과 실려 있던 알루미늄괴는 모두 행방이 묘연했다. 지금까지도 그 행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조달청 발주 알루미늄괴 싣고 항해 중 실종
텐유호는 1998년 9월 27일 오후 10시 20분 인도네시아 북부 수마트라섬의 쿠알라항에서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목적항인 인천항을 향해 떠났다. 이 배에는 대한민국 조달청에 납품될 번들 형태의 알루미늄괴 3천6t(1998년 당시 가격으로 약 36억 원)이 실려 있었다. 승선자는 한국인인 신영주(1947년생) 선장과 박하준(1954년생) 기관장, 그리고 중국인 선원 12명 등 모두 14명이었다.
텐유호는 9월 28일 0시 20분께 소속 회사인 일본 마쓰모토 기선에 출항 보고를 했고, 오전 1시 17분께 선주에게 텔렉스를 보냈다.
이 배가 정상으로 교신한 것은 오전 1시 30분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시아 사이의 '말라카해협'이 마지막이었다.
텐유호는 28일 정오에 '정오 보고'(noon report·매일 정오에 하는 현 위치 상황 보고)를 해야 했지만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29일 0시까지도 교신이 안 되자 선박 소유사 일본 마쓰모토 기선의 모회사인 도쿄 소재 텐유 해운은 일본 해상보안청에 '행방불명' 신고를 했다.
이어 일본 해상보안청은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해사국(IMB) 소속 기구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소재 해적신고센터(PRC)를 통해 동남아 주요 국가들에 선박 수배를 요청했다.
실종 직후 한국,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중국 등의 해사기관들이 하늘과 바다에서 입체적인 수색을 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텐유호의 행방은 파악되지 않았다. '유사 선박' 신고가 몇 건 들어오기는 했으나 모두 오인 신고로 드러났다.
텐유호는 추석을 해상에서 쇠고 나서 10월 8일 인천항에 입항할 예정이었으나, 믿을만한 단서는 전혀 잡히지 않은 채 이 날짜도 지나가 버렸다.
한국 해양경찰청은 일본 선주 측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실종 신고를 한 지 이틀 후인 10월 1일 일본 제7관구 해상보안본부로부터 '선박 소재 확인 요청'을 받으면서 텐유호가 행방불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본부에 보낸 10월 17일자 전문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현재까지 동 선박의 소재지와 관련해 어떠한 정보 또는 단서도 입수하지 못한 상태로 동 선박이 일본해역에 들어왔는지 아닌지도 파악이 안 되는 등 수색의 진전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 선박을 관리해 온 토난 해운(Tonan Shipping Co.)측과 일본 해상보안청의 전문가들은 실종 신고 초기에 텐유호가 텔렉스를 수신할 수 있었던 점을 들어 "선박이 침몰하지 않았지만, 응신(應信)이 불가능한 선박내 사정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었다.
또 만약 침몰이었다면 자동으로 조난신호가 발신돼 탐지가 가능했을텐데도 해상보안청 등 어떤 곳에서도 조난신호를 탐지하지 못한 점도 해경이 '침몰 시나리오'를 수사 초기부터 배제하게 된 요인이었다.
해경 수사관들도 이 점에 주목해 배가 출항 직후 말라카해협에서 해적의 습격을 받았거나 선상 반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해경청 수사과에 근무하면서 텐유호 사건 수사팀에 참여했던 조철제(당시 경사)씨는 텐유호 실종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떠오른 생각은 '선상 반란' 가능성이었다고 회고했다.
해상폭력 사건 수사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2013년에 경감으로 퇴직한 조철제씨는 "그 때(1998년 텐유호 실종사건 당시)까지만 해도 국제범죄조직이나 해적들과 연계된 선박·화물 밀매 사업을 하는 사기 조직이 그렇게 번성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포함해 검찰과 경찰 등 우리 수사기관에 국제공조 필요성의 인식이 부족했으며, 그 결과 텐유호 실종 사건이 반영구적 미제(未濟)로 세월에 묻히게 됐다는 것이 조 전 경감의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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