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전 도입 예술체육 병역특례…시대따라 '고무줄' 변천
2002년 축구 월드컵·2006년 야구 WBC 때도 형평성 논란
국방부·병무청, 타국 사례도 파악 못해…'주먹구구식' 비판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세계 무대에서 국위선양 공로가 있는 예술·체육인들에게 병역혜택을 주고자 45년 전 도입된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는 시대에 따라 대상자를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는 등 고무줄처럼 변천을 거듭해왔다.
유신체제인 1973년 3월 도입된 이 제도는 '국위선양'이라는 거창한 명분 뒤에 박정희 시대의 '홍보성' 기획이 강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제도 자체가 대한민국 남성은 헌법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병역법 제3조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계속됐다.
특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야구대표 선수 중 일부가 병역을 미룬 끝에 선발됐다는 자격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당 특례 제도의 폐지 또는 개선 요구가 커지는 모양새다.
◇ 예술체육분야 특례대상자는 '고무줄'…비판 제기되면 고치길 반복
4일 병무청의 인터넷 홈페이지(www.mma.go.kr)에 게시된 예술체육 요원 소개자료를 보면 이 제도는 시대에 따라,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고치기를 반복해왔다.
1973년 제도가 처음 시행됐을 때는 올림픽대회,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 이상 입상하거나 한국체대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면 특례 혜택을 받았다.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함께 입상자가 급증해 논란이 일자 1990년 4월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로 특례 대상이 축소됐다. 2002년에는 축구 월드컵 16위 이상 입상자가 추가된다. 2006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4위 이상 입상자도 포함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면서 박지성 등 10명이 특례를 받았고, 2006년 WBC 4강 진출로 김태균 등 11명이 혜택을 봤다. 두 대회에서 특례가 늘면서 병역 형평성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2007년, 축구 월드컵과 WBC 대회 입상자가 특례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체육분야는 2008년 1월부터 현재까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가 특례 대상이다. 단체종목의 경우 경기가 시작된 순간부터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만 해당한다. 뛰는 시간은 5분이든, 10분이든 무관하며 정해져 있지 않다.
특례자로 결정되면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하고 자신의 특기 분야에서 34개월을 종사하면 된다. 이 기간 544시간의 특기 봉사활동도 마쳐야 한다. 다만, 국외 활동선수는 국외에서의 봉사는 272시간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채워야 한다.
예술분야는 1973년 시행 때는 '국제규모 음악경연대회 2회 이상 우승 또는 준우승', '관계 중앙 행정기관이 인정한 사람'이 대상이었다. 1984년 9월 국제예술 경연대회 2위 이상, 국내 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5년 이상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을 받은 자로 확대됐다.
2008년 1월부터 특례편입 인정 대회가 대폭 정비된다. 음악은 123개 대회(유네스코 국제음악대회 가입), 무용은 17개 대회(유네스코 국제무용대회 가입 11개, 5회 이상 개최 및 9개국 이상 참가대회 6개)가 인정됐다. 국제 대회가 없는 국내 분야 8개 대회(국악, 한국무용, 미술 등)도 특례 범위에 속하게 된다.
2011년 1월부터 국제음악경연대회 123개를 30개로 축소한 데 이어 2012년 7월에는 27개로 줄었다.
현재는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 중 입상 성적순으로 2명 이내, 병무청장이 정하는 국내 예술경연대회(국악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만 해당)에서 1위 입상자 중 입상성적이 가장 높은 자,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자에게 특례 혜택을 주고 있다.
예술분야는 소속 복무기관이 없어도 되며 '개별창작' 활동이 인정된다. 70% 이상의 예술요원이 개별창작 활동으로 특례 복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술체육요원들은 연 1회 개인 발표나 전시회 등 실적보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들이 규정대로 사회적 취약계층과 청소년, 미취학 아동 등을 대상으로 공연, 강습(교육) 등 봉사활동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확인하기 쉽지 않다. 봉사 의무시간인 544시간에 미달하면 채울 때까지 복무가 연장된다.
병무청과 문화체육관광부는 합동으로 연 1회 복무점검 실태조사를 하고 있으나 적발된 사례가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 한 번 입상 특례자격 부여 형평성 논란…행정은 주먹구구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병역의무 형평성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다. 그런데도 사회 분위기에 따라 병역특례의 범위와 대상이 원칙 없이 변경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예술체육 분야의 국위선양 기준이 단 한 번의 입상 성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각종 대회 입상성적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일정 점수 이상 되는 자에게 특례편입 자격을 부여하는 '마일리지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병역특례의 범위 확대와 축소는 정부 부처에서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논의하고 결정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부의 복무점검 절차도 강화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예술체육 분야 특례자가 4주간 기초 군사훈련만 마치면 자신의 특기분야에서 34개월 복무하는 동안 국가의 관리나 복무 점검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실히 병역을 이행하는 현역병과의 위화감 조장을 부추긴다는 목소리도 크다.
국방부와 병무청은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는 국가 중 우리와 같은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를 운용하는 사례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운영 실태도 참고하고, 해당 국가 병무행정 부처의 의견도 들어가면서 세밀한 연구 끝에 특례 범위 확대와 축소 등의 제도 변경이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상 주먹구구식 행정을 해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서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제를 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별도로 파악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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