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종료 그리스총리 "현대판 '오디세이' 끝…새날 밝아"
치프라스 총리, 오디세우스 고향 이타카서 대국민 연설
현지 언론 "이타카 도착해도 계속 노 저어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그리스는 8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구제금융 치하에서 벗어남으로써, 현대판 '오디세이'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리스가 20일(현지시간) 8년에 걸친 구제금융 체제를 공식 마무리한 가운데, 알렉시스 치프라스(44) 총리가 긴축으로 점철된 혹독한 신탁통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소감을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21일 그리스 서해안 이오니아해에 자리 잡은 이타카 섬에서 대국민 연설을 해 8년간 이어진 지난한 구제금융 체제를 견딘 국민에게 사의를 표하고, 그리스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힘을 모을 것을 당부했다.
그는 TV로 생중계된 이날 연설에서 8년여 동안 이어진 구제금융 체제를 "현대판 '오디세이'"라고 부르며, "오늘은 해방의 날이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는 고초와 우여곡절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그리스는 이제 스스로의 운명과 미래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결정할 권리를 되찾았다"며 "우리는 구제금융에서 얻은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그리스가 왜, 누구 때문에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한 시대를 접고, 새 시대를 여는 의미를 지닌 이날 연설의 장소로 이타카 섬을 택한 것은 의미심장한 전략으로 읽힌다.
이타카 섬은 '오디세이'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영어식 표기는 율리시스)의 고향으로 설정한 곳으로, 그리스인들의 정서와 뗄 수 없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디세우스는 작품 속에서 10년간 바다를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이타카에 도착해 가족과 재회하는 '해피 엔딩'을 맞이했다.
그리스는 방만한 재정 지출로 2009년 말 채무 위기에 직면한 뒤 2010년 4월부터 총 3차례에 걸쳐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으로부터 총 2천890억 유로(약 370조원)의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수령해 나라 살림을 꾸려왔다.
그리스는 그 대가로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방만한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 등 구조 개혁을 수행하는 것과 함께 세금 인상, 재정 지출 대폭 삭감 등의 조치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맬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급여와 연금 삭감 조치가 거듭되면서 구제금융 체제 기간 그리스 국민의 월급과 연금 수령액은 평균 3분의 1가량이 쪼그라들었고, 투자와 소비가 모두 위축되며 그리스 국가 경제규모는 이 기간 25% 축소됐다.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유로존 최고 수준인 각각 20%, 40% 수준까지 치솟았고, 국민의 3분의 1은 빈곤층으로 내몰렸다.
그리스는 일단 구제금융 체제에서는 벗어났으나, 경제 정상화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또한, 당분간은 채권단의 혹독한 감시 아래 긴축 정책을 지속할 수밖에 없어 국민이 체감하는 구제금융 종료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그리스 일간 에트노스는 21일 1면에 "이타카에 도착하고도,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편, 8년 전 그리스가 국제채권단에 구제금융을 처음 요청할 때에도 당시 총리였던 게오르게 파판드레우는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오디세이'에 나서야 하지만, 우리는 이타카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물살을 헤쳐나가자"고 말해 그리스인들의 의식의 원형을 형성하고 있는 '오디세이'를 인용한 바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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