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노래하듯 詩를 읊죠"

입력 2018-10-10 08:01
[연합이매진] "노래하듯 詩를 읊죠"

김성곤 교수 "漢詩는 막사발 같은 존재"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김성곤(56)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노래하듯 한시(漢詩)를 읊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무협영화 속 등장인물의 노래처럼 중국식 성조(聲調)에 가락을 넣어 과장되게 읊으며 흥겹게 한시를 전한다. 그의 노래는 '음송'(吟誦)이라 불린다. 말하자면 낭송과 노래의 중간 정도 되는 표현법이다. 그는 강의할 때 한시를 음송하고, 과장된 동작을 취하면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있다.

김 교수는 EBS 세계테마기행의 '중국한시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곳곳의 명승지를 방문해서도 그는 유명한 시인과 한시, 고전에 얽힌 이야기를 벌써 8년째 음송과 과장된 몸짓으로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김 교수를 서울 대학로에 있는 연구실에서 최근 만났다. 출입문에는 '君淡如菊'(군담여국, 당신은 담박하기가 국화와 같다)이란 글씨가 붙어 있다. 김 교수는 "소박하고 질박한 삶을 추구하고 국화처럼 절조를 지킨 도연명과 같은 삶이 이상"이라고 했다.



-- 한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 고등학교 고전 시간에 중국 시를 접할 기회가 있었죠. '두시언해'도 친숙했고요. 대학에 들어가서 2학년 때 전공을 고르는 데 자연스럽게 중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서울대 중문과는 언어보다는 문학의 비중이 컸고 그중에서도 시를 가장 우선시했어요. 시 관련 수업이 많다 보니까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한시를 공부하게 됐죠. 그런데 한시는 저의 감성적인 스타일과 잘 맞았어요. 제가 사변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하거든요. 박사 과정을 수료할 무렵인 1992년부터는 스승님과 함께 두보시 독해를 시작했어요. 두보의 시는 1천400편에 달하고 문학사적으로 영향력이 큰데 두보시의 완역본이 '두시언해' 이후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오역이 많고 보충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함께 두보시 주해서를 내보자고 한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두보전집 8권을 냈습니다. 그게 공부가 많이 됐어요. 한시를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계기가 된 거죠. 한시 공부의 즐거움도 거기에서 발견했습니다.

◇ "말에 詩 곁들이면 품격이 달라져"

-- 한시의 매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 예전 지식인의 표현력을 우아하게 한 것이 시였죠. 말에 시를 곁들이면 품격이 달라져요. 고상하고 우아한 품격을 갖추기 위해 시가 필수적이었죠. 저는 특히 한시의 '휴식론'에 주목합니다. 송나라 때 곽희라는 화가는 "인간은 자연에 있을 때 성장을 도야할 수 있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데 바빠서 자연을 찾아갈 수 없다"고 말했어요. 1천 년 전에도 사람들이 무척 바쁘게 살았나 봐요. 그는 자연을 초청해서 우리 곁에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산수화라고 했어요. 산수화를 보면 탁족을 하거나 폭포를 바라보고 차를 다리며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산수 속에 사람을 배치한 것은 바로 산수화가 자연으로 초청하는 휴식의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여기 와서 차 한잔하시게, 나랑 함께 서서 폭포를 바라보세나, 흘러가는 물에 피로에 찌든 발을 담가보자며 초청하는 것이 바로 산수화라는 거죠. 산수화의 시작은 산수시에서 시작합니다. 한시에는 달, 바람, 강, 청산 등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등장해요. 자연을 한시에서 느끼는 거죠.

당나라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는 '산거추명'(山居秋暝)에서 "明月松間照(명월송간조) 淸泉石上流(청천석상류)"라고 읊었어요.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 비치고 맑은 물은 돌 위로 흘러간다"는 뜻이죠. 시를 읊으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죠. 정신이 그 세계에 가서 노닐며 쉴 수 있어요. 한시는 이렇듯 바쁘게 사는 현대인에게 휴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 당나라 말기 시인 두목은 '청명'(淸明)에서 "淸明時節雨紛紛(청명시절우분분, 청명절에 비가 분분히 흩날리니) 路上行人欲斷魂(노상행인욕단혼, 길 가는 나그네 애간장 끊어진다) 借問酒家何處有(차문주가하처유, 묻느니 술집이 어디 있느뇨) 牧童遙指杏花村(목동요지행화촌, 목동이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킨다)"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온갖 일로 애간장이 타는 사람이 쉴 수 있게 하는 그런 살구꽃 핀 마을 같은 것이 바로 한시라고 생각해요. 물론 휴식은 한시의 일부분이죠. 자연 속에서의 휴식에 초점을 두는 것은, 다른 것은 한시 이외의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한자는 그 자체가 회화적이어서 우리말로 표현하기 힘든 산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죠. 그런 회화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중국한시기행'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 중국한시기행에서 저는 경승지와 한시를 연결해주고 있어요. 시인은 어떤 격물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에 깊이 천착하죠. 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진부함이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낭비죠. 즉 시를 읊으면서 여행의 깊이를 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태산에 올라가면 우리 설악산보다 더 낫다고 얘기하면서 실망하죠. 하지만 두보의 '태산을 바라보며(望嶽)'란 시를 읊으면 태산이 주는 의미와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두보는 "會當凌絶頂(회당능절정, 반드시 태산 꼭대기에 올라서) 一覽衆山小(일람중산소, 뭇 산들이 자그맣게 엎드리는 것을 굽어보리라)"라고 합니다. 당시 두보가 과거에 떨어졌을 때인데 언젠가 태산처럼 으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태산이 품은 숨은 의미죠. 오악독존(五岳獨尊), 다시 말해 오악 중에 으뜸은 태산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거예요.

◇ "언어 세련되게 하는 데는 詩가 최고"

-- 중국인에게 한시는 어떤 것이고, 현재 중국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 고전이 중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옛 시가 일부만 좋아하는 골동품 같은 것이라면 중국에서 한시는 막사발 같은 거죠. 밥도 담고 국도 푸고 하는 막사발같이 늘 실용적으로 쓰이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지식인이라면 시를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시가 언어를 세련되고 아름답게 하고 영향력을 확대한다고 생각했죠. 시로 인재를 뽑기도 했어요. 그런 것이 의식에 남아 있죠. 지금도 중국인은 일상에서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옛 한시 속의 구절을 쓰고 있어요. 심지어 길거리 광고 문안에도 사용하죠. 시로 압축된 표현들을 발췌해서 생활 속에서 격언처럼 쓰고 있어요. 지금 중국에 옛 시를 겨루는 '중국시사대회'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데 굉장히 인기가 높습니다. 또 언어를 세련되게 하는 데는 시만 한 것이 없어요. 공자가 어느 날 아들 백어에게 "시를 공부하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하자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시를 모르고는 백성을 이끌어가고 설득하고 격려하는 관리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가장 좋아하는 한시는 무엇인가요.

▲ 두보의 시를 가장 좋아합니다. '춘야희우'(春夜喜雨)란 시가 있어요. 두보가 오랜 유랑 시기를 지난 후 가족을 데리고 초당을 짓고 살게 된 시기에 지은 시죠. 자기 공을 내세우지 않는 어머니 같은 봄비의 덕성을 노래한 거예요.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내리네.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나에게 재주를 주었으니 반드시 쓰일 데가 있을 터)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환복래, 내가 뿌린 천금도 결국 다 돌아올 것이다)"란 구절이 있는 이태백의 '장진주'(將進酒)도 좋아합니다.

-- 리더십 주제의 강연에서 겸청(兼聽)을 강조합니다.

▲ 경청(傾聽)은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이고 겸청은 아울러 듣는다는 것입니다. 리더는 뜻과 코드를 같이하는 사람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고 자기와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거죠. 중국 최고 명군으로 꼽히는 당나라 2대 황제 이세민(당 태종)이 대표적이에요. 어느 날 이세민이 신하 위징에게 "명군과 혼군(어리석은 임금)을 가르는 기준이 뭐냐"고 묻자 "겸청즉명(兼聽則明) 편신즉혼(偏信則昏)"이라고 답합니다. 위징이 역대 군주를 모두 조사했더니 명군의 공통점은 바로 겸청이었다는 거예요. 겸청은 나와 다른 의견을 배제하지 않고 왜 그런 의견이 나왔을까를 고민하고 고심하는 거죠. 위징은 겸청을 가장 잘한 군주로 요순을 꼽습니다. 요임금이 수도로 정한 산시(山西) 성 남부 린펀(臨汾)의 요임금 사당 옆에는 '비방목'(誹謗木)이라는 커다란 나무가 세워져 있어요. 백성들이 찾아와서 억울한 일을 그곳에 쓰거나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비방목을 신문고처럼 쳤다고 해요. 요임금은 마음을 항상 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던 거죠.

◇ "명군은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어야"

겸청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편신입니다. 한 사람만 옳다고 믿고 다른 사람 이야기는 전부 듣지 않는 거죠.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진시황의 아들인 호혜죠. 호혜는 수많은 인재가 가득한 진나라 조정에서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고 오직 환관인 조고의 말만 듣다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죠. 명군이 되려면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면 안 되고,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어야 합니다.

-- 교육에 '음송'을 적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중국 한시는 음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국어의 고저장단을 규칙적으로 잘 배열해서 음악성을 느낄 수 있게 하죠. 원래 시는 노래였어요. 나중에 음악적 요소가 사라지고 문자만 남아 읽는 시가 된 거죠. 비록 읽는 시가 됐지만 한시는 읊으면 구조적으로 음률을 잘 느낄 수 있게 돼 있어요. 한자가 가진 성조에 음악성을 가미해 늘릴 것은 늘리고 좁힐 것은 좁힌 것이 바로 음송이죠. 2000년대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갔다가 음송을 알게 됐어요. 중국 정부가 지켜야 할 문화재라고 생각해서 전국 곳곳에서 음송을 수집했다고 해요. 그때 자료를 수집해 한시에 음악성을 가미하면 사람들이 흥미로워하겠다 싶어 익히게 됐죠. 강의할 때 음송을 하면 사람들이 훨씬 집중하게 됩니다. 노래여서 즐겁기도 하고 한번 각인되면 잘 잊히지도 않는 장점이 있어요. 사실 노래는 아니에요. 노래와 낭송의 중간쯤 되는 거죠.

-- 시조를 창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시조 모임에서 쓰고 있습니다. 중국한시기행을 갔을 때 장소에 맞는 한시가 없으면 그곳 정서에 맞게 짓기도 하죠. 내놓을 만한 시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시를 써보면 시를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삶은 현대적인데 한시는 옛날 장르여서 상투를 쓰고 구두를 신은 격이에요. 한시를 한시답게 하려면 똑같은 현실을 읊어도 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하죠. 이런 이유로 저는 음풍농월을 시로 읊습니다. 자연이란 틀 속에서 삶을 얘기하는 거죠. 도회적인 것은 굳이 한시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작시 한 수를 소개하겠습니다.

山行(산행)

帶妻遊憩地(대처유게지) 아내와 노닐며 쉬는 곳

秋色滿山時(추색만산시) 추색이 산에 가득한 때

黃葉飛春蝶(황엽비춘접) 낙엽은 봄 나비처럼 날고

淸暉抱幼兒(청휘포유아) 햇살은 아이처럼 안기네

相隨風拂影(상수풍불영) 서로 따를 제 바람은 그림자를 스치고

相看日斜眉(상간일사미) 서로 바라보니 햇살이 눈썹을 비끼네

細果蕪榛赤(세과무진적) 작은 열매들 덤불 속에 붉어

乾香步步吹(건향보보취) 마른 향내 걸음마다 풍겨오느니

-- 한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비법이 있나요.

▲ 중국 명시부터 시작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더라도 뛰어난 구절 정도를 이해하고 하나씩 읽다 보면 될 것 같아요. 시중에 나와 있는 한시 번역서를 보는 것도 좋겠죠. 명구라고 여겨지는 구절들을 외우다 보면 시 공부가 재미있어질 겁니다.

--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 내년에 EBS '중국한시기행' 10편을 하게 됩니다. 매년 1편씩 해왔는데 10편까지 하면 완성이 될 것 같아요. 중국한시기행과 관련한 책도 써볼 생각이에요. 한시의 뜻을 살리고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한시 소개서도 써보고 싶습니다. '두보전집' 작업도 계속해야죠. 벌써 24년째 하고 있는데 정년 때까지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