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독박' 근본 수술 필요하다
(서울=연합뉴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올해 7, 8월 두 달간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현행 3단계 누진제 가운데 1·2단계 요금을 적용받는 전력사용 상한선을 100㎾h씩 올리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전력사용량 300㎾h 이하 구간은 1단계 요금(kWh당 93.3 원)이, 301∼500㎾h 구간은 2단계 요금(㎾h 당 187.9 원)이 적용된다. 500㎾h 초과 때는 3단계 요금(㎾h 당 280.6 원)이 부과된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7일 당정협의를 거쳐 올여름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이 많았던 서민들의 전기요금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이번 누진제 완화로 가정용 전기요금 총액 인하 효과는 2천761억 원에 달하고, 가구당 전기요금 부담은 19.5% 줄어드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당정은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냉방지원 대책도 내놓았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다자녀 가구, 사회복지시설 등에 적용되는 전기요금 복지할인을 7∼8월에는 30% 확대하기로 했다. 이들에게는 누진제를 완화해 주는 것보다 전기요금을 직접 할인하는 것이 혜택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출산 가구 전기요금 할인 대상도 출생 후 '1년 이하 영아' 가구에서 '3년 이하 영유아' 가구로 확대된다. 이런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나 사회적 배려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 조치들은 기록적인 폭염이 덮친 올해 여름철에만 적용된다. 전기요금 누진제의 기본 틀을 바꾸는 문제는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올여름에는 역대 전국 최고기온 기록이 깨지는 등 재난 수준의 폭염이 이어졌다. 장시간 에어컨을 켰을 테니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할 만도 하다. 정부가 한시적 누진제 완화로 가정의 이런 전기요금 걱정을 덜어 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로 여름철 폭염은 일상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폭염을 재난의 범위에 넣어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재난안전법을 개정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폭염기 냉방권을 기본 인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도한 전기요금 걱정으로 꼭 필요할 때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내년 이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폭염 때는 누진제를 완화해 서민들이 과도한 전기요금 부담 없이 에어컨을 켤 수 있길 바란다.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가 공론화될 공산이 크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회가 전기요금 관련 공론화 장을 만들어 주면 정부도 협력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016년 여름 전기요금 폭탄으로 그해 겨울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6단계에서 3단계로 완화됐지만, 아직도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보다 누진율이 높다. 전력 낭비를 줄이는 누진제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전체의 13∼14%에 그친다. 나머지 전력은 산업용과 일반용 등으로 소비된다. 누진도 없고 요금도 낮다. 에어컨을 튼 채 문을 열고 영업하는 상가의 전기요금을 가정이 보전해주는 꼴이다. 우리 전력 소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다. 전기요금제 대수술이 필요한 대목이다. 누진제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형평성을 유지하려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고 다른 전기요금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 과소비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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