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블랙리스트' 검찰수사 우려…"더 큰 후폭풍"

입력 2018-07-31 16:34
양승태 사법부, '블랙리스트' 검찰수사 우려…"더 큰 후폭풍"

법원행정처 "하드디스크 뒤질라"…추가조사 막을 논리 강구

지난해 진상조사 직후 작성 문건…추가조사 여부 따른 시나리오 분석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사찰하고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진상 조사한 뒤 추가조사 요구에 대응할 방안을 강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최근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이 불거진 발단이 된 사건으로, 1∼3차의 내부 진상조사를 거쳤다.

2∼3차 진상조사에서 결정적 의혹 단서인 법원행정처 컴퓨터 내 하드디스크를 열어볼 수 있게 되면서 결국 검찰 수사를 촉발하게 됐다.

법원행정처가 31일 공개한 문건에는 양승태 사법부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1차 진상조사를 마친 뒤 하드디스크 등에 대한 추가조사를 우려하면서 대책을 검토하는 내용이 드러나 있다.

작년 4월 법원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실에서 작성한 '현안 관련 추가 물적 조사 여부 검토' 문건에는 당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 여부를 시나리오별로 나눠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는 법원행정처가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블랙리스트 의혹이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낸 1차 조사 직후였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대법원장의 법관사찰 개입 여부, 인사 불이익의 존재 여부에 대한 조사가 미진했다며 관련자의 업무용 컴퓨터 등을 추가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해 문건은 추가 물적 조사를 하는 경우의 시나리오를 먼저 상정했다.

문건은 "특별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복원되지 않은 자료 중 중요한 자료가 있으리라는 추가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며 "조사를 하더라도 사건 해결이 난망하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조사 이전에 컴퓨터 저장장치가 상당 부분 이미 삭제됐고, 삭제 지시 여부는 알지 못한다고 공지한다면 이런 추가 의혹을 막을 수 있지만, 삭제 행위에 대해 별도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예측도 덧붙였다.

추가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조사해 심각한 내용의 자료가 발견되는 시나리오에서는 "현 상황보다 더 강한 후폭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높다"며 "내용의 심각성, 구체성에 따라서는 형사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다음으로 문건은 추가 물적 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의 시나리오에서는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이후 상황을 분석했다.

합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고 본 경우에는 "판사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있다면 수습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봤다. 대신 "문제는 다수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이유를 제시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하드디스크 등을 외부기관에 복구를 맡긴다는 것의 부담과 보안 우려,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의 문서가 나올 경우 정치적 분쟁에 휘말릴 우려, 다른 컴퓨터의 조사로 이어져 끊임없는 의혹 제기와 추가조사로 이어질 가능성 등을 고려할 사항으로 꼽았다.

문건은 추가조사를 하지 않는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경우는 "사후 수습에 대해서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지속된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법원행정처 내 컴퓨터에 대한 외부기관의 강제 조사는 사실상 어려우므로 추가조사는 끝까지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추가조사를 하고 법적 책임을 부담하느냐, 거부하고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고 적었다.

문건은 이런 분석을 토대로 표까지 그려 넣은 뒤 "추가조사를 하지 않는 것의 평균적 기댓값이 더 높지만, 최선은 물적 조사를 실시하고 특별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어 "추가조사를 실시하지 않으면서 기댓값을 높이려면,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에 (관심이) 집중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sncwoo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