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목표미달'…소득주도 성장 속도조절 불가피
인상 속도 늦춘 대신 EITC 개편하고 노인가구 소득 지원 확대할 듯
고용 상황 개선 여부도 관심…정부 준비 부족 지적도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내년 최저임금 인상 폭이 당초 목표에 못 미친 10.9%로 결정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축 중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면서 소득분배 개선을 과제로 안고 있는 정부의 고민도 더 커지게 됐다.
이번 최저임금 숨 고르기로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악화한 최근 고용 상황에 숨통을 트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계획보다 낮은 인상 폭에도 소상공인의 반발이 여전한 만큼 당장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 서민 자영업 겹악재에 결국 최저임금 인상 '목표 미달'
최저임금위원회는 14일 새벽 내년도 최저임금을 8천350원으로 의결했다. 이는 올해보다 10.9% 오른 것으로 지난해(16.4%)보다 5.5%포인트 낮은 것이다.
이로써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실현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다는 가정하에 올해와 내년 인상 폭을 같게 잡으면 이번에 최저임금을 15.2% 인상해야 하는데 이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폭이 당초 계획에 미치지 못한 데에는 최근 '쇼크'로 여겨질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고용 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 폭은 10만6천명에 그치는 등 최근 5개월 연속 10만명 전후에 머물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이다.
고용 부진은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몰려있는 숙박·음식업을 중심으로 특히 두드러졌다.
통계청의 산업별 미시 데이터를 보면 올해 1분기 임시·일용직 감소 폭은 1년 전보다 5만여명 더 확대됐는데 이중 2만명 가량이 모두 숙박·음식업 종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 소득주도성장 '동력' 차질 빚나…고용 개선 여부도 관심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주된 동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당초 계획이 불발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함께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속도조절론은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이 2003년 이래 최대 폭으로 줄어들어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는 통계가 발표되면서 본격화됐다.
특히 저소득가구 소득을 끌어내린 주된 요인이 됐던 임시·일용직 고용 악화가 최저임금 인상 영향인지를 두고 정부 안팎에서 논란이 됐다.
1분위 가구의 이전소득이 1분기 근로소득을 처음으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재정에 의지해 저소득가구의 소득을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회의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당초 계획보다 다소 늦추되 EITC(근로장려금), 노인연금 등 노인가구를 중심으로 심화한 저소득가구의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규제개혁 관련 회의를 쏟아내며 혁신성장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띄는 것도 이런 기조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 숨 고르기로 최근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고용 상황이 다소 개선될 수 있을지도 관심 사안이다.
경영계가 당초 우려했던 수준보다 인상 폭이 작았던 만큼 지금보다는 일자리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내년도 두 자릿수 인상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서민 자영업에는 부담될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한 상황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최저임금 결정 후 즉각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 결정에 불복종하는 모라토리엄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정부 준비 부족 탓 지적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준비 없이 강행된 탓에 결국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결정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서민 자영업 경기 위축 등은 이미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부작용이었다.
정부는 일자리 안정자금 등 대책을 마련해 적극 홍보에 나섰지만 정작 최저임금이 인상되고 난 뒤 부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조차 확보하지 못해 대책 마련에 애를 먹었다.
올해 초 가계소득과 고용 통계가 부진을 거듭하면서 최저임금이 영향이라는 분석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관련 통계가 없다"며 연관성을 부인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고용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자 최근에서야 최저임금과 고용 부진과 연관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일부 업종과 연령층의 고용 부진에는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있다"며 최저임금의 인상 폭을 신축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최저임금 인상 폭을 업종별로 차등화해 효율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강하게 제기됐지만 이 역시 관련 통계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공익위원인 김성호 최저임금위 부위원장은 "업종별 구분을 할 만큼 (기준이 될) 완벽한 통계가 없다"며 "그런 제약이 있다 보니 과연 (제대로) 작동될 것인가를 정부 전문가들도 염려했고 동의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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