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해빙] 역사적 北美 공동성명…남북 6·15선언과 닮은 꼴

입력 2018-06-13 14:26
수정 2018-06-13 14:36
[한반도 해빙] 역사적 北美 공동성명…남북 6·15선언과 닮은 꼴



정상 간 서명을 바탕으로 관계 풀어갈 원칙·합의에 큰 유사점

6·15선언 이후처럼 북미후속회담·사회문화교류 등 신뢰구축 주목



(싱가포르=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6·12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양국 간 현안을 푸는 원칙을 담았다.

북한이 언론에 공개한 공동성명의 전문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명은 1항에 양국관계의 개선을 담았다. 현재 한반도 상황이 상호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는 만큼 관계를 개선하고 신뢰를 쌓아서 비핵화 문제 등 핵심 현안을 풀겠다는 의지를 담은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각 항의 배열 순서다. 1항은 평화·번영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2항은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3항은 북한의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4항은 한국전 미군 포로·실종자 유해 발굴을 담았다.

순서가 시계열적인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핵화를 하고서 평화체제 논의를 하고 그에 이은 북미관계 정립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깼다. 거꾸로 북미 관계 개선 노력을 바탕으로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이를 두고 국내외의 강경파와 대화파 간에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면에서 이번 6·12 공동성명은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합의인 '6·15공동선언'을 연상케 한다.

6.15 공동선언에는 남북관계를 푸는 원칙들이 명시되어 있다. 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해 남북 간의 신뢰와 협력이 우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도적 문제의 해결, 경제협력을 비롯한 사회문화 교류의 활성화, 당국간 대화의 개최 등을 담았다.

여기에 북미 양측이 6·12 공동성명에 최고지도자의 상호 방문과 고위급 당국회담 등을 담은 것도 6·15공동선언과 닮았다.

특히 형식적으로도 이번 공동성명은 6·15선언과 마찬가지로 적대관계에 있는 양 정상이 직접 서명한 첫 합의문서라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이번 공동성명은 6·15선언처럼 현재 수준에서 합의 가능한 의제는 구체적으로 적고, 좀 더 논의가 필요한 의제는 추상적으로 적고, 합의가 어려운 의제는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넣지 못함으로써 앞으로 북미가 지향할 방향을 담았다"며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첫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북미 간에 만들어진 합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 북미 기본합의도 있었고 2005년 9·19공동성명도 있었지만 이들 합의는 북핵문제 해결을 기본 목표로 다른 사안을 부수적 관심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성명과는 차이를 보인다.

적대적 북미관계가 현재 양국 사이의 핵심문제라는 점을 간파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위협인 핵 문제에만 집착한 합의여서 사소한 갈등에도 파기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또 2000년 조명록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발표한 조미(朝美)공동코위니케가 있었지만, 북미 정상 간 합의가 아니었고 보도문의 형태여서 한계가 분명했다는 지적도 있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1972년 적십자 접촉을 시작으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에 보내 '7·4공동성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남북대화는 미중관계의 진전 등 국제적 '데탕트' 무드 속에서 떠밀려 이뤄진 것이어서 계속 진전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지지 못했다. 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대내적으로 장기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는 데탕트에 따른 남북 화해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19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도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라는 현실적 위기감 속에 회담에 나온 북한이 수동적으로 합의를 체결함으로써 합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훌륭했지만, 이행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6·12공동성명을 채택한 북미 양측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이 보여준 것과 유사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남북 양측은 정상회담 직후 장관급회담을 열어서 후속조치를 논의했고 이산가족 상봉과 언론사 사장단 초청 등을 이어가면서 신뢰를 쌓아가기 위한 행동을 이어갔다.



북미 양측도 이번 회담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측의 고위인사가 만나는 고위급회담을 준비 중이다.

또 북미 양측간에 다양한 교류의 물꼬가 터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존재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 경제보다는 사회문화 쪽에 중점이 두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는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오찬에서는 조미회담의 성과를 공고히 하고 조미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하여 쌍방 사이에 의사소통과 접촉내왕을 보다 활성화해 나갈 데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었다"고 지적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미 간의 사회문화 분야 교류가 속도를 내면서 양국간 신뢰를 쌓아가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경제 분야에서도 제재가 존재해 협력은 어렵겠지만, 북한의 경제시찰단 방미 등을 통해 협력의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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