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틀째 침묵…'北반발' 변수에 대응향배 놓고 "고심중"
대응방향과 수위가 북미정상회담에 영향…판 지키며 원칙 고수 부담
백악관 대변인 '힘든 협상' 예고…정상회담 준비하되 무산가능성도 대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고강도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동부시간으로 16일 오전 모두 5건의 트윗 글을 올렸지만 정작 북한과 관련한 메시지는 없었다. 전날 신장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부인 멜라니아 여사 문병을 다녀오면서 기자들로부터 관련 질문이 쏟아졌을 때 답을 하지 않은데 이어 이틀째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남북고위급 회담의 전격 중지를 발표한 데 이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성명을 통해 "일방적 핵 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다"며 북미정상회담 재고려 카드까지 던진 상황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침묵'은 이례적이다.
이는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고민이 깊다는 반증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어떤 내용과 수위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여부와 협상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의 핵심은 판을 지키면서 원칙도 고수하는 묘수를 찾는 것이다. 북한이 반발하고 있는 일괄타결식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자니 자칫 판이 깨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원칙을 양보하는 것은 지금까지 견지해온 소신과 정책적 목표와 맞지 않는데다 초장부터 북한과의 의제 주도권 싸움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NN방송은 16일(현지시간) "북한의 변화구는 백악관이 대응의 딜레마에 처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특히 "이 같은 상황변화는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자제력을 시험할 것"이라며 "'리틀 로켓맨'(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섣부른 트위터가 긴장감을 악화시키고 회담 자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 배경을 분석했다.
협상력 제고 등을 염두에 둔 북한의 이번 반발에 대한 정면 응수가 자칫 정상회담 판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핵 해결사'를 자처하며 이번 정상회담에 올인해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행동'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백악관도 북미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며 일단 신중론을 견지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오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미정상회담 개최는 여전히 희망적"이라며 "우리는 계속 그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동시에 우리는 힘든 협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준비해왔다"며 "만약 회담이 열린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준비됐으며, 만약 열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인 최대 압박 전략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도 전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미정상) 회담 계획을 계속 세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행정부는 일단 6·12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계속해 나간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미 억류자 3인의 석방 '선물'을 북한으로부터 받은 데다 최대 압박 작전으로 대변되는 대북 제재도 유지되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급할 게 없다는 분석도 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 시간을 누리면서 북한이 정말 김정은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대좌하는 정통성을 부여할 북미정상회담 기회를 날려버릴 준비가 돼 있는지를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준비 중인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반발이라는 변수의 부상으로 셈법이 복잡해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북한이 강한 불만을 제기했긴 했지만,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CVID 기준을 쉽사리 낮추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북한 측이 '선 핵 폐기-후 보상'의 리비아 해법을 콕 찍어 반발하면서 이 해법을 주창해온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목한 것은 회담을 앞두고 부담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 내 강온 노선 간 균열을 시도하려는 북한의 노림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일단 북한의 정확한 의도 파악에 집중하면서 협상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김 부상의 성명을 통해 '대북 적대시 정책과 위협 종식'을 거듭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만큼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추가적 메시지가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힘든 협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준비해왔다'는 샌더스 대변인의 언급대로 북한의 이 협상 패턴은 과거에도 반복돼온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측이 어느정도 이러한 시나리오를 대비해왔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의 재방북 당시 동행했던 국무부 브라이언 훅 선임 정책기획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큰 성공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적으로 괜찮다"며 "잘 안되더라도 가동할 외교전략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세계적 최대 압박 캠페인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당시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도 "매우 준비가 잘 돼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을 주시하면서 적절한 시점에 '입'을 열 것으로 보인다.
CNN은 "이번 상황 변수로 인해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진정성 여부를 대면해 직접 가늠할 기회라는 그 의미가 더 커질 수 있다"며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결심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몇 달간 '진전'에 대해 지나치게 자랑해왔고 지지자들도 노벨상 수상을 외치는 등 정상회담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졌던 게 사실"이라며 "오히려 북한의 이번 행동은 지나친 기대감을 '톤 다운'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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