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시대 국경없이 수사한다만"…허탕 일쑤

입력 2018-05-13 09:05
"SNS시대 국경없이 수사한다만"…허탕 일쑤

혜경궁 김씨·기숙사 몰카사건…美본사에 압수영장 보내

표현의 자유·개인정보 보호 내세운 美업체 소극적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최근 경찰이 해외에 본사를 둔 SNS 업체에 압수수색 영장을 보내 수사 협조를 구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 논란이 된 게시물의 SNS 계정 소유자를 찾기 위해서다. SNS업체의 협조를 얻어내는 게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이다보니 국경을 뛰어넘는 글로벌 수사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지난 9일 학교폭력 상담전화인 117로 경기 남부지역의 한 고등학교 여학생 기숙사를 불법 촬영한 영상물의 캡처 사진이 유포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확인 결과 기숙사를 몰래 촬영한 영상 여러 개가 SNS인 텀블러에 올라왔고, 이 모습을 캡처한 사진이 인터넷에 퍼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텀블러에 영상을 올린 계정의 주인을 찾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영어로 번역, 미국 텀블러 본사에 보내기로 했다.

해외 SNS 업체를 상대로 압수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국내에서 이뤄지는 강제수사와는 다르다. 물리적인 압수수색이 아니라 수사 협조 공문을 보내는 정도이다. 우리의 사법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상 게시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한 첫 단추나 다름없다.

그러나 텀블러 측이 우리 경찰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일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텀블러 유저의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둔다면 협조를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피해자가 다수의 여자 청소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사협조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외 SNS 업체의 수사 협조 여부는 범죄 성격에 따라 말그대로 "그때 그때 달라요"다.

앞서 지난달 8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 나선 전해철 예비후보는 트위터 계정 '@08__hkkim'이 자신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악의적인 글을 올렸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이 계정의 소유자를 밝히기 위해 미국 트위터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보냈으나 수사 협조가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트위터 측은 "범죄의 성격을 고려할 때 (해당 계정 사용자에 대해)답변할 수 없다"라고만 회신했다.

여기서 범죄의 성격이란 살인 등 강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는 물론 해당 국가에서도 처벌받는 범죄는 수사 협조를 끌어내기 수월한 편이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정치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고 각국의 법률과 문화 등 처한 사정이 서로 달라 협조를 받기가 다소 어렵다.



하지만 강력범죄가 아니더라도 국가원수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2016년 1월 페이스북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한 욕설과 함께 "청와대를 공격하러 가자"면서 총기와 탄약 사진이 게시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당시 경찰은 압수영장을 통해 미국 페이스북 본사에 수사 협조를 구했고, 곧 IP 주소를 넘겨받아 사진을 올린 대학생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별다른 협조를 받지 못했다.

2015년 12월 이천 '빗자루 교사 폭행' 사건 당시 가해자 중 1명과 같은 실명의 트위터 계정으로 "저런 쓰잘데기도 없는 기간제 빡빡이 선생님을 때린 게 잘못이냐?"는 등의 내용의 글이 게재됐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 가해자가 글을 올린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는 데다 PC와 휴대전화에서 트위터 접속 기록이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제3자가 글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해당 계정 소유자를 찾기 위해 미국 트위터 본사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미국 등 해외 SNS 업체가 소재한 선진국 특성상 명예훼손은 물론 기타 유사한 사건에서는 수사 협조를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게 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경찰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해외 SNS 업체에 사건과 관련한 계정 소유자 정보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사이버 수사 분야는 국경이 없다"라며 "범죄 성격에 따라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자체적으로 다양한 수사 기법을 개발 중인데, 이 과정에서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ky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