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국군 학살 피해자-제주 4·3 피해자 '아픈 기억' 공유

입력 2018-04-23 23:08
베트남 한국군 학살 피해자-제주 4·3 피해자 '아픈 기억' 공유

서귀포시 강정마을서 '베트남과 제주 기억의 밤' 열려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함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23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강정평화상단 선과장에서 베트남 종전 43주년과 제주 4·3 70주년을 기념하는 '베트남과 제주 기억의 밤'이 진행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문창우 주교는 인사말에서 "오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일가족을 잃는 참혹한 경험을 한 두 손님이 베트남에서 왔다"며 "두 분을 비롯한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주교는 이어 "함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라며 "참혹한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평화를 위해 함께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에 사는 홍춘호(80) 할머니와 강정마을의 강영애(76) 할머니가 각각 4·3 당시 가족과 자신이 겪었던 참혹한 경험을 100여명의 참석자들과 공유했다.

이어 베트남 꽝남성 퐁미 마을 출신의 응우엔티탄(57·여)씨는 "제주에 와 할머니들의 피해 증언을 들으니 너무나 유사한 경험이어서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군에 의한 학살이 벌어진 1968년 2월 그는 8살이었다. 마을에 들이닥친 한국군은 어머니가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간 사이 집에 함께 있던 오빠와 언니, 5살 난 남동생에게 총을 난사해 죽였다고 했다. 형제들을 돌봐주러 온 이모와 10개월 난 동생도 한국군의 총검에 찔려죽었다고 증언했다.

그 역시 한국군의 총에 복부를 맞았고 쏟아지는 창자를 부여잡고 엄마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학살당한 주민들의 주검 속에서 엄마를 발견했다고 눈물의 증언을 했다.

꽝남성 하미 마을 출신의 응우엔티탄(60·여)씨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학살의 생존자이자 목격자이기 때문에 학살의 진실을 밝히고, 유사한 고통을 평생 가지고 살아온 제주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학살 당시 11살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한국군은 마을 사람들을 방공호에 몰아넣고 수류탄을 한번 던져 넣은 뒤 또다시 양쪽 입구에서 동시 두 개의 수류탄을 던졌다고 했다. 첫 수류탄에 아기를 안은 숙모가 아기와 함께 숨졌고, 두번째 수류탄 투척 때 엄마를 잃었다고 했다. 자신과 남동생을 몸으로 감싼 엄마 때문에 자신은 목숨을 겨우 건졌지만, 동생은 다리 한쪽을 완전히 잃고 12시간가량 방치됐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고 했다.

한베평화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하미 마을에서만 135명이 학살됐다. 그 가운데 10살 미만 어린이는 59명에 달한다.

베트남전 종전 43주년(4월 30일)과 한국군 꽝남성 학살 50주기를 맞아 응우엔티탄 씨 등 한국군 학살 피해자들을 초청한 한베평화재단은 지난 19일 국회 기자회견, 21∼22일 시민평화법정 등 연속 행사를 치르고, 이날 오전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 응우엔티탄(60)씨는 "우리는 살아서 이 자리에 서지 못한 피해자들 대신에 다시 한 번 한국 국민에게 호소한다. 한국 정부의 사과를 받고 싶다. 한국 정부는 한국군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해 달라"고 말했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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