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부정' 원인규명하는 '제3자위원회'는 허울뿐?

입력 2018-04-17 07:00
일본 '기업 부정' 원인규명하는 '제3자위원회'는 허울뿐?

'등급위', '제3자보고서' 16건 중 절반 최저 또는 불합격 평가

해당 기업 '주문''에 맞추거나 '유리'하게 작성한 사례 많아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고베(神戶)제강, 닛산(日産)자동차, 스바루, 도레이, 미쓰비시(三菱)머티리얼...

품질이나 통계조작, 무자격 검사 등 각종 부정 행위가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일본 기업들의 면면이다. 해당 기업들은 부정 행위가 드러나 문제가 될 때 마다 전가의 보도 처럼 '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다짐한다. 기업 자신이 조사하는게 아니라 '제3자의 눈'으로 엄정하게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제3자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가 거의 예외없이 사용되는 상투 문구다. 그리고 "'제3자'에 의한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 그런데 이런 '제3자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과연 믿을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3자'가 마련한 보고서 중에는 기업의 '주문대로' 작성하거나 '(기업에) 유리하게' 작성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NHK에 따르면 지난 9일 도쿄도(東京都)내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색다른 기자회견이 열렸다. '제3자'가 작성한 이런 류의 보고서를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위원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이었다.

"보고서 신용등급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위원회는 이날 회견에서 3월 발표된 고베제강의 제품검사 데이터 조작 파문 관련 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충분한 조사를 실시했는지, 통계조작이라는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헤쳤는지를 평가한 '등급'을 발표했다.

9명의 위원이 매긴 등급은 4단계 평가의 최저 등급인 'D'가 3명, 나머지 6명은 불합격에 해당하는 'F'였다. 등급이 낮은 주된 이유는 고베제강의 '어카운터빌리티(설명책임)'였다. 변호사 3명으로 구성한 외부 조사위원회가 조사했지만 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는 발표되지 않았다. 대신 부정행위 당사자인 회사 측이 마련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회사 측은 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은 이유로 미국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고 캐나다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중인 점 등을 들었다.

등급위원회 구보리 히데아키(久保利英明) 위원장은 회견에서 『외부 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그대로 발표해 어카운터빌리티를 발휘할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고베제강은 왜 공표하지 않았을까. 주주, 고객, 종업원, 지역사회, 건전한 증시라는 관점에서도 정말 유감』이라며 회사측의 자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등급위원회는 변호사와 저널리스트, 연구자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전원 자원봉사자다. 4년전부터 기업과 단체의 '제3자 위원회' 등의 보고서에 대해 말 그대로 "신용등급"을 매겨 홈페이지에 발표하고 있다. '제3자 위원회'는 10여년 전부터 불상사를 일으킨 기업이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목표로 설치하기 시작한 기구다. 그러나 제3자가 작성한 보고서 중에는 기업의 '주문대로' '(기업에) 유리하게' 작성됐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용등급은 위원 각자가 'A'~'D'의 4단계로 평가한다. 불합격은 'F'다. 평가는 일본변호사연합회가 8년전에 제시한 제3자 위원회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했다. 가이드라인은 ▲ 조사는 경영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주주, 종업원, 고객 등)를 위해 실시할 것 ▲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구성원이 중립성을 갖고 조사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 위원은 등급을 평가할 때 ▲ 사실관계의 정확성, 원인분석의 깊이, 불상사의 본질에 대한 접근성, 조직적 요인에 대한 언급여부 ▲ 재발방지 제언의 실효성, 설득력, 기업과 조직 등의 사회적 책임, 임원의 경영책임에 대한 적절한 언급 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가이드라인에 입각해 지금까지 16건의 보고서를 평가한 결과 'A' 평가를 받은 건 1건에 불과했다. 최저 등급인 'D'와 불합격인 'F'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평가위원별로는 위원장인 구보리 변호사가 절반 이상인 9건에 대해 'F' 평점을 줬다. 그는 "아닌 건 아니라고 위원장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경고가 되지 않는다. 위원장은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제, "그래서 '정직'하게 했다"며 '정직'을 특별히 강조했다.

구보리 위원장이 제3자 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걸 새삼 확신하게 된 건 현재 경영재건중인 도시바(東芝) 보고서(2015년 7월 발표)가 계기다. 도시바 제3자 위원회는 3년전 인프라 관련 회계처리를 둘러싼 문제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설치됐다.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등 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2개월 후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조직적인 관여가 있었다"며 경영체질을 신랄히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 역대 사장 3명이 사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얼핏 의미있는 보고서 처럼 보이지만 등급위원회의 평가는 'C'가 4명, 'D'가 1명, 'F'가 3명이었다. 구보리 변호사는 'F'를 줬다. 위원들이 특히 문제로 본건 조사대상을 좁힌 점이었다. 보고서가 나온지 불과 4개월 후에 도시바가 미국 원자력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후일 파산)의 거액손실을 계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제3자 위원회는 웨스팅하우스를 조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보고서는 조사의 전제로 ▲ 조사결과는 도시바를 위해서만 이뤄졌다 ▲ 도시바와 합의한 위촉사항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본 보고서에 기재돼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조사도,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이에 대해 등급위원회는 "조사대상이 의뢰자의 '주문대로' 한정되면..."이라고 지적, 제3자 위원회의 자세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구보리 변호사는 당시 웨스팅하우스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했더라면 결과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NHK는 "명목뿐인 제3자위원회"를 없애기 위해서는 "언론이 제대로 된 비판을 계속하고 평가를 담당하는 신용평가회사가 철저히 감시하는게 필요하다"는 구보리 변호사의 말을 소개하면서 "정직"이 가장 중요한 덧목이라고 강조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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