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용량 '0'인데…생활고 모녀 사망 막을 수 없었나
'복지사각지대' 보호망 더 촘촘하게 운영됐으면 비극 막았다
(증평=연합뉴스) 윤우용 기자 = 충북 증평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두 달 전 숨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녀 사망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 보호망이 여전히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개월째 수도사용량이 '0'으로 표시됐음에도 지자체는 이런 실태를 파악조차 못 했다.
이 모녀가 사는 아파트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와 수도요금·전기료 체납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이런 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으면서 모녀는 적어도 숨진 지 두 달 만에 발견됐다.
정부가 4년 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이후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를 조사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도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2개월에 한 번씩 단전·단수 등을 확인해 각 지자체에 명단을 통보하는 데 숨진 A씨는 이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임대보증금 등 재산이 있어 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관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세심한 복지사각지대 보호망만 구축되고 운영됐으면 모녀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군이 기초생활 보장 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32개 기관 113명으로 운영하는 '쏙쏙 통'도 유명무실했다.
숨진 모녀는 이 망을 통해 발견되지 않았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교사, 공무원, 응급구조사 등으로 구성된 쏙쏙 통 신고 의무 대상자는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원 대상자를 발견하면 관할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군은 또 지난해 11월 복지시각지대에 처한 위기 가정을 발굴하기 위해 개별 방문이 가능한 한전과 가스공급업체와 MOU를 맺었지만 한전 등도 모녀의 선택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숨진 모녀는 군이 사회보장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지속해서 관리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군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는 807가구 1천51명, 차상위계층은 385가구 753명이다.
숨진 이들 모녀처럼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에 속하지 않으면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지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고 군은 해명했다.
모녀가 사는 아파트의 경우 평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월세는 10만∼15만원, 임대보증금은 9천900만원∼1억4천만원인 민간 임대아파트다.
2015년에 처음 입주해 989가구가 산다.
2년 후 우선 분양받을 수 있다.
네 살배기 딸과 함께 숨진 A씨도 친구나 친인척과의 왕래나 통화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의 관리비 고지서가 통합 고지되는 것도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조기에 발견할 수 없었던 한 이유로 꼽힌다.
이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는 전기·수도요금, 가스 요금, TV 수신료 등이 함께 부과된다.
군 관계자는 "전기나 수도요금이 개별적으로 부과됐다면 해당 기관에서 개별적으로 방문해 납부를 독촉하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위기 가정을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며 안타까워했다.
군은 올해에는 우체국·상하수도사업소와 같은 내용의 협약을 맺는다는 계획이지만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군 관계자는 "복지사각지대 발굴과 해소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신속한 신고가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 뒤 "9일부터 군내 20개 민간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3개월 이상 전기료나 수도료가 체납된 가구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yw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