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국가들, 미중 무역전쟁에 "새우등 터질라" 우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중국에 각종 산업용 부품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 떨어지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7일 보도했다.
이 지역 국가들의 일부는 심정적으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난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바 있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우라타 스지로 교수는 "상처를 입는 것은 당사국만이 아니며 다른 국가들도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특히 자원 대국인 호주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호주는 연간 7억t의 철광석과 제련용 석탄, 전자제품용 구리를 중국에 수출하는 국가로, 수출의 3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호주 야당인 노동당의 짐 찰머스 의원은 "무역전쟁의 확산 혹은 관세 보복의 리스크가 있을 때마다 우리 경제는 상당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은 지난 1월에 일찌감치 감지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무역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외국산 태양광 패널에 최고 3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주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을 겨냥한 것이지만 REC 솔라홀딩스의 싱가포르 공장을 포함한 여타 제조업체들도 타격을 받고 있다. REC 솔라홀딩스는 지난해 1~3분기에 출하량의 약 3분의 1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무역전쟁이 본격화되자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일본 엔화의 가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급등했다. 엔화 강세는 일본 전자부품 수출업체들에는 악재에 해당한다.
물론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 하청업체들이 무역전쟁으로 피해를 본다면 베트남이 반사이익을 챙길 수 있다.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대규모 휴대전화 생산기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아세안 기업인협의회의 알렉산더 펠드먼 회장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생산을 축소하는 식으로 리스크 헤지를 모색할지 모르며 동남아 국가들이 이런 균형 조정의 논리적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으로 아태 지역에서 수입을 늘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례로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보복을 가한다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이 대량으로 생산하는 팜유와 같은 대체 농산물의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다.
싱가포르 메이뱅크 금융의 하크 빈 추아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전쟁은 아주 초기 단계에 있고 어떻게 진행되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중국산 가전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두 나라가 전자제품 공급체인에 긴밀히 연결된 아세안 국가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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