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 작가 구보타 히로지 "사진은 내게 하나의 집착"(종합)
학고재서 첫 한국 개인전…4월 22일까지 109점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작은 체구의 노인이 나타났다. 어깨에 사선으로 멘 낡은 검정 가방에서 작은 후지 카메라 하나를 꺼낸 남자는 현장에 있던 기자들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은발 아래 신난 소년의 눈빛이 보였다. 그는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사진전의 주인공인 일본 작가 구보타 히로지(79)였다.
구보타 히로지는 세계의 손꼽히는 사진가 그룹인 매그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학고재 전시 '구보타 히로지-아시아를 사랑한 매그넘 작가'는 한국에서 열리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1988년, 2008년 단체전을 통해 그의 작품이 국내에 전시된 적은 있었지만, 작업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촬영한 109개 작품이 나왔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사진작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면서 반세기 전 기억부터 더듬었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던 젊은이는 큰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효도라 여겼다. 1960년대 학생 운동에 참여하던 중, 현장을 취재하던 유명 사진가 하마야 히로시 조수 역할을 한 것이 사진과 인연을 만들었다. 그가 다리를 놓아 만난 사람이 매그넘 작가인 엘리엇 어윗이었다.
매그넘 작가와의 만남은 사진작가로 진로를 트는 데 동기부여가 됐다.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고, 사진을 배우기는커녕 암실에 들어가 본 경험조차 없던 그의 삶이 한순간에 바뀐 것이다. 1962년 엘리엇 어윗의 보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내가 원숭이가 됐다"고 껄껄 웃었다. "일본에서는 바나나가 너무 비싼데 미국에서는 큰 바나나가 5센트밖에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나나만 종일 먹었죠.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 바나나밖에 없네요."
오전 4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작업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1965년 매그넘 작가가 됐어요. 대단히 빨랐죠"라고 회고하는 작가의 얼굴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지금 돌아보면 사진은 제게 하나의 '집착'과도 같아요. 저는 사진을 너무 좋아합니다. 제게 사진 촬영이 그렇듯이 열심히 하는 대상을 여러 개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미국 흑인 민권운동 현장, 베트남 사이공 함락 등을 카메라에 담아온 작가는 성실한 관찰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한·중·일은 물론,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티베트 등을 여행하며 각 나라의 문화와 일상을 기록했다.
이번 전시는 '초기 작업' '세계여행' '컬러의 세계' '중국' '한국과 북한' '미국과 일본' 등 6개의 소주제로 나뉜다.
미얀마의 불교 성지인 황금바위와 그 앞에서 손을 모은 승려들, 일본 가나가와의 사설 신부 학교에서 훈련받는 여성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북의 히피 젊은이들 등 다채로운 작품이 나왔다.
특히 1978년 촬영한 미얀마 황금바위는 흑백 사진만을 고집했던 작가가 컬러 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가 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남·북한을 향한 작가의 오랜 관심도 확인할 수 있다.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등 남북의 수려한 명산 풍경과 2007년 서울 한강 주변의 항공 사진, 1970~1990년대 북한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염색을 이용한 다이트랜스퍼로 인화한 사진들의 독특한 미감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다이트랜스퍼 인화를 위해 독일의 장인을 13차례 찾아갔다"라면서 "75만 달러나 들었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금방 만났다"고 전했다.
개막일인 10일 오전 11시에는 관람객과 작가가 대화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유로포토와 매그넘한국에이전트가 공동 주최·주관한 전시는 4월 22일까지 열린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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