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나빠요"…미투도 외칠 수 없는 이주 여성들

입력 2018-03-08 07:30
"사장님 나빠요"…미투도 외칠 수 없는 이주 여성들

잦은 신체 접촉, 성관계 요구…10명 중 1명 성폭력 피해 경험

언어·제도 장벽 가로막혀 가슴앓이만…예방·구제 장치 절실

(전국종합=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1. 어깨를 껴안거나 포옹했어요.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옷이나 바지를 당겨서 들여다봐요. 옷을 몇 개 입었는지 확인하는 거에요. 사장님 정말 어이없어요.

#2.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방에 와서 '나 한번 안아줘', '뽀뽀해줘', '주물러줘'…. 한 번은 체류 자격 연장하러 사장님하고 단둘이 트럭을 타고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갔다가 오는 길에 모텔 앞에 차를 세우는 거에요. 그러더니 '한 번만 자고 가자'고….

#3.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어요. (가해자가)말하면 너희 나라로 보내버린다고 협박을 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또 이게 알려지면 나는 정말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산하 상담소를 찾은 이주여성들이 어렵게 입을 연 성폭력 피해 사례다.

결혼, 노동, 유학 등으로 한국에 들어와 사는 이주민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절반이 여성들이다.

이주여성들은 취약한 사회적 보호장치 속에 각종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바람에도 언어와 제도의 장벽에 가로막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다.

이주여성 관련 성폭력 피해 실태를 알 수 있는 국가통계는 없다.

다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운영하는 상담소의 상담통계를 통해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8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와 대구이주여성상담소 2곳에 접수된 성폭력 관련 상담 건수는 456건에 이른다.



이런 상담시설이 있는지 모르거나 주위 시선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이주여성이 훨씬 많아 실제 성폭력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2년 전 이 센터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주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엿볼 수 있다.

이 센터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2016년 5∼8월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상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중 64%는 한국인 고용주나 관리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피해를 보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64.4%) ▲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52.6%) ▲ 일터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15.8%) ▲ 가해자가 두려워서(10.5%) ▲ 한국에서 추방될까 봐(5.3%) 등을 꼽았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이주여성은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종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게 된다"며 "의사소통의 어려움, 미흡한 지역 지원체계 및 예방·구제 제도 때문에 많은 이주여성이 지금도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요즘 거센 '미투' 운동에도 왜 유독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이 성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오는 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장에서 '이주여성들의 #Me Too'란 주제로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고도 드러낼 수 없는 이주여성들의 실태를 공론화하는 성폭력 사례 발표회를 연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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