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이 열렸다" 새벽부터 이집트 검문소로 몰려든 가자주민

입력 2018-02-22 11:43
"국경이 열렸다" 새벽부터 이집트 검문소로 몰려든 가자주민

치료·학업·사업 제각각…대기자 3만여명 중 일부만 이집트 입국 '행운'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다섯 살 내 아들은 2년 이상 병치레를 하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봤지만 치료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번이 가자 밖으로 나가려는 3번째 시도인데 오늘은 행운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되고 싶어요."

가자지구에 사는 칼릴 케시타(45)는 어린 아들이 악화하는 위 질환으로 피를 토하고 있다며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2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털어놓았다.



케시타는 이집트 정부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가자 접경에 있는 라파 검문소를 개방하기로 하자 다른 수천 명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검문소로 달려왔다.

케시타는 주로 치료차 혹은 학업이나 사업을 이유로 이집트로 가려는 약 3만명 중 한 명으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운이 좋아야 이름이 불려 이집트 입국이 허용된다.

다른 학생 한 명도 터키로 가려고 검문소 앞으로 나왔다. 이 학생은 터키에서 공학을 공부하기로 돼 있었지만 이미 지난해 9월 학기 시작을 놓쳤고 이번에 재도전에 나섰다.

약 200만 명이 사는 고립지역인 가자에서 외부세계로 나가려면 3개의 국경 검문소 중 하나를 거쳐야 한다. 이스라엘이 두 개를, 이집트는 나머지 하나인 라파 검문소를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6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의회 선거에서 승리, 지역을 장악하자 이듬해부터 가자 봉쇄에 나섰다.

이집트의 경우 하마스가 이집트 시나이 지역의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2013년부터 통행을 차단했다. 이후 매월 혹은 격월 간 수일 동안만 국경을 열어주는 식으로 가자인들의 숨통을 틔워줄 뿐이다.

이집트가 라파 검문소를 열어준 것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유엔에 따르면 이집트가 지난해 라파를 개방한 날은 36일에 불과하다.

아픈 엄마를 만나려고 가자로 왔다가 약 1년간 발이 묶인 시함 알 자크(37)는 이날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아 원래 거주지인 알제리로 갈 수 없게 됐다.

자크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며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으며, 단지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가자 주민들은 경제 붕괴 속에 이스라엘과의 3차례 전쟁 동안 사회기반시설이 크게 훼손되고 물자 공급마저 원활치 않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자지구 통치권을 두고 대립 중인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인 파타와 현재 통치세력 하마스가 지난해 11월 통합에 합의해 잠시 여건이 나아질 듯 보였으나 이후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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