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원 작가 "여자란 존재의 거대한 힘 보여주려 했죠"
새 장편소설 '이별이 떠났다' 출간…MBC 드라마 제작·방영 예정
'소원', '터널' 등 히트작 낸 스타 작가…올해 데뷔 10주년 맞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여혐시대가 도래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남자라는 존재가 여자에서부터 시작하고, 가족이든 사회든 모든 것의 시작이 여자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여자라는 존재의 거대한 힘을 보여주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소재원(35) 작가는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신작 '이별이 떠났다'(새잎)를 쓴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이 소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 가정에 매몰돼 살아오다 배신당한 중년 여성의 회한과 스무 살에 덜컥 임신해버린 젊은 여성의 어려운 선택, 이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똑부러지는 커리어우먼이었던 '서영희'는 항공사 기장인 남편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살아온 50대 여성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남편의 외도와 이혼 요구다. 젊은 승무원과 바람이 나 아이를 얻고 딴 살림까지 차린 것이다. 큰 집에 홀로 남아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하루하루 죽은 것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던 그녀에게 어느날 손님이 찾아온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의 여자친구 '정효'가 아이를 임신했다며 출산할 때까지 이 집에 머물겠다고 한다. 임신 8주차인 정효는 아이를 지우라는 남자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는다.
영희는 일말의 책임감에 일단 정효를 받아들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침해당해 언짢고 귀찮기만 하다. 그러나 입덧과 빈혈, 우울증을 겪는 정효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되고, 그런 부딪힘 속에서 두 사람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정효는 영희를 '엄마'라 부르고 두 사람은 강한 연대감으로 묶여 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정효의 아이가 태어나면서 영희 남편인 '한상진', 영희의 아들이자 정효 남자친구인 '한민수', 한상진의 불륜녀인 '세영', 정효의 아버지, 정효를 일찍 떠난 엄마 등과의 갈등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늙고 젊은 두 여성을 중심축으로 한 이 소설은 후반부에 주변 인물들의 내밀한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독자가 등장인물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 것은 재작년에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여자들은 사회로부터 강제적으로 엄마란 이름을 부여받는데, 그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를요. 이 시대 엄마들이 다 그렇게 강요받아왔잖아요. 그런 면에서 여자란 존재는 사회적인 약자가 아닌가 생각했죠. 어쩌면 가장 강하면서 약한 존재일 수 있다고."
재난을 둘러싼 사회의 부조리를 그린 '터널: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였다', 아동성폭행 문제를 다룬 '소원: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등 굵직한 사회 문제들을 그려온 전작들에 이어 이번 작품 역시 사회 문제, 약자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설명이다.
그가 여성이란 존재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경험한 어머니의 부재와도 관련이 크다고 했다.
"제가 열세 살에 어머니가 떠나서 집안의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걸 봤거든요. 한 여자로 인해 모든 가정이 이뤄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여자들은 혼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지만, 남자들은 절대 스스로 울타리를 치지 못합니다. 남자들은 여자로 인해 책임감과 무게감을 얻을 수 있죠."
그는 한때 어머니를 증오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를 많이 증오하면서 누구보다 여혐이 짙었죠. 그러나 저 역시도 자식을 낳고 살아가다 보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소설가가 되고 나서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어머니를 찾았는데, 만나고 보니 그 증오마저도 그리움과 사랑이었다는 걸 느꼈죠. 여자가 가정을 지키든 떠나든,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는 누구나 타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각자의 사정을 100% 이해하지 않는 이상 비난은 조심스러워야 하죠."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 삶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아기의 탄생을 계기로 한 가족관계 회복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다소 상투적인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흐려져 아쉬움을 남긴다. 작가는 이런 결말에 의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 시대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해결해줄 방안도 없잖아요. '정효'는 당찬 인물이지만 엄마화가 돼버리고 억울하지만 이를 받아들여요. 여기에 독자들이 조금은 반발심을 갖기를 간절히 원했어요. 분명히 반발이 필요한 결론이죠. 이 시대 남자들이 깨우쳐야 한다고, 이걸 해피엔딩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바로 옆에서 육아에 매인 아내의 삶을 보면서 더욱 그런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아내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능력을 발휘하며 일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엄마란 역할에 충실하고 있어요. 저는 밖에서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아내는 그저 어린이집에서 다른 엄마들만 만나면서 누구 엄마로 불리고 있죠. 그런 게 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희망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비스티 보이즈'(원작 '나는 텐프로였다'), '터널', '소원' 등으로 영화화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소설 역시 서사의 힘이 강하고 캐릭터와 대화의 생동감이 크다. 영상화에 적합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결이 부드러운 이야기여서 TV 드라마에 더 어울린다. 역시 이런 점이 드라마 제작자들의 눈에 띄어 계약이 이뤄졌고, 오는 5월 MBC TV 토요극으로 방영된다. 배우 채시라가 주인공 서영희 역을 맡는다. 원작자인 그가 이번에 처음으로 드라마 극본 집필에도 나섰다.
"원작과는 달라지는 게 좀 있어요.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강하게 키우고, 책에서 유도하지 못한 것을 드라마에선 확실하게 보여줄 계획이에요. 우리나라 여성들이 억압되고 억눌린 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한 묘사들이 많이 들어갈 듯 합니다."
올해는 그가 작가로 데뷔한 지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앞으로 10년만 더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매일 4시간씩 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서 그 이상 쓸 자신이 없거든요, 그 전까진 많은 작품을 써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소설을 매년 한 작품씩 출간하되 영화나 드라마로도 계속 만나뵐 수 있도록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번에 드라마 데뷔작을 쓰게 돼서 지금 잠도 안 자고 쓰고 있는데요,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mi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