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루지 황제' 폭삭 주저앉힌 평창 '악마의 9번 커브'
3차 주행까지 1위 달리다 4차 9번 커브서 큰 실수…올림픽 3연패 문턱서 좌절
(평창=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11일 오후 10시 40분께 강원도 평창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 모인 수천 명의 관중과 선수, 기자들은 큰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루지 싱글 경기가 막 끝난 시점이었다.
슬라이딩센터의 트랙 종점에는 '루지 황제' 펠릭스 로흐(29·독일)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주행 실수를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앞선 상황은 이랬다.
총 4번의 주행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매기는 이 날 경기의 4번째 주행은 3차 주행까지 순위의 역순으로 시작했다.
1∼3차 주행 합계 1위를 기록한 로흐는 4차 시기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로흐는 21세기 최고의 루지 선수로 불리는 스타다.
그는 태어난 지 20년 205일 만이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올림픽 루지 역대 최연소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기세를 이어가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싱글, 팀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로흐는 이날 밤 평창에서 올림픽 3연패를 눈앞에 둔 것으로 보였다.
무난하게 4번째 주행을 펼치며 금메달을 향해 순항하는 듯하던 그의 운명은 '악마의 구간'으로 불리는 9번 커브에서 순식간에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로흐는 발을 끌면서 9번 커브를 빠져나왔고, 썰매가 미끄러지면서 결국 날이 옆으로 틀어진 채 10번, 11번 커브를 통과했다.
0.001초로 승부를 가리는 루지에서 이는 치명적인 실수다.
곽송이 MBC 해설위원은 연합뉴스 통화에서 "9번 커브에서 펠릭스의 그 실수가 너무 컸다"며 "펠릭스가 올림픽 3연패를 앞두고 크게 방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9번 커브는 회전 각도가 10도 안팎이고 속도가 시속 120㎞에서 100㎞ 정도로 떨어지는 구간이다.
이 커브를 빠져나오면 직선 주로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미세하게 좌우로 휘어져 있는 10∼12번 커브가 나온다.
이 코스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9번 커브에서 속도를 줄이면 기록이 늦어지고,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힐 우려가 있다.
결국, 루지 황제도 9번 커브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로흐의 4차 시기 성적은 19위(48초109)로, 1∼4차 시기 기록을 합산한 최종 성적은 5위로 뚝 떨어졌다.
로흐는 머리를 쥔 채 괴로워했고, 관중은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으며, 은메달을 예상하다가 느닷없이 굴러들어온 행운에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오스트리아의 데이비드 글라이셔(24)는 기뻐서 동료들을 얼싸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한국은 다른 썰매 종목인 봅슬레이,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노린다.
종목은 다르지만, 경기는 루지와 같은 트랙에서 열린다.
남자 스켈레톤 윤성빈(24), 남자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33)-서영우(27)가 홈 이점을 살려 4차례의 주행 모두에서 '악마의 구간'을 잘 빠져나와 끝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ksw0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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