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들추면 복마전인 방산비리, 근본대책은 언제 나오나
(서울=연합뉴스) 우리 군의 적 항공기 격추용 중거리 지대공미사일(M-SAM)인 '천궁(天弓)' 양산 과정에서 방위사업청 직원들과 방산업체 간의 유착 비리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감사원이 1일 발표한 '천궁 양산산업 계약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방사청 천궁 계약·사업 관계자들은 업체를 통해 본인의 재취업은 물론 아내·조카·처남 등을 취업시키고 법인카드까지 받아썼다고 한다. 천궁 양산 사업을 분리 계약하지 않고 일괄계약하는 쪽으로 밀어준 대가일 것이다. 그 바람에 업체에는 376억 원이 더 지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의 잇속을 챙기느라 방위력 강화에 써야 할 천문학적인 예산이 허투루 쓰인 것이다.
감사원에 적발된 방사청 계약팀장 A 씨의 비리는 가관이다. 천궁사업팀이 천궁의 초도양산 계약 형태를 정하면서 레이더, 교전통제소, 발사대를 분리 계약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지만 A 씨는 계약팀의 고유권한이라며 일괄계약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 결과 2012년 12월 일괄계약이 체결되고 LIG넥스원은 초도양산 일괄계약에 따른 위험보상 등의 명목으로 176억 원을 더 받았다. A 씨는 한 달여 뒤 LIG넥스원의 협력업체 B사에 취업청탁을 하고 이듬해 4월 전역한 뒤에는 이 회사 상무로 재취업해 3년간 급여로 2억3천800만 원을 받았다. 또 LIG넥스원에 납품하는 C사에 유리하게 품목사양서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하고 C사의 법인카드를 받아 7천300만 원을 사용하는가 하면 아내마저 이 회사에 취업시켜 형식적으로 출근하게 하고 6천만 원 가까이 받았다고 한다. 일괄계약 체결을 밀어주고 그 대가로 챙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긴 셈이다. 방사청의 원가감독관 D 씨는 조카와 처남의 취업을 청탁하고, 후속양산 사업팀장 E 씨는 LIG넥스원 자료를 넘겨받아 이를 토대로 후속양산 계약을 체결해 200억 원을 더 보상해줬다고 한다. 이들의 개인 비리도 문제지만 방산업체가 이들을 비리의 늪으로 끌어들인 측면도 크다고 하겠다.
이번에 적발된 비리는 모두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방산비리의 뿌리가 깊은 만큼 현재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방산비리는 범죄를 넘어 국가안보의 적"이라며 방산비리 척결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또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그 많은 돈을 갖고 뭘 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방산비리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나온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방산비리 대책이 그 심각성만큼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국방부가 군 적폐청산위원회를 출범시켜 방산비리 척결 및 제도개선 등을 1차 의제로 정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결과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이 지난 9일 '방위사업 개혁 협의회' 첫 회의를 하고 '방위사업 개혁 종합계획'을 3월까지 마련하기로 한 것이 전부다. 서두르다 보면 졸속 대책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좌고우면하며 저울질할 상황은 아닌듯하다. 우리 군이 북한 핵 위협에 대처하는 '3축 체계' 구축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디서 방산비리로 구멍이 생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천궁은 3축의 하나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무기로 개발 중인 '천궁 블록-Ⅱ'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번 방산비리가 천궁의 계약과 관련된 것이지만 성능에도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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