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다들 우리 부서를 무덤이라 부르죠" 어느 방역관의 하소연
외롭고 힘든 AI와의 싸움…여름 석 달 빼고 연일 비상근무
"소독약 뒤집어쓰고 짜장면으로 때우기 일쑤…욕은 욕대로 듣고"
"차량 기사·농민, 소독기준 준수·방역 동참, 인력 확충 절실"
(무안=연합뉴스) 장아름 박철홍 정회성 기자 = 방역팀에 들어오면 공무원들은 '무덤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가축방역관 수의직 공무원입니다.
지난해 10월 1일 AI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이후 100일 넘게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9월 석 달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방역초소 근무가 걸린 날에는 짜장면 한 그릇 해치우고 현장에 나가 소독 업무를 합니다.
먼지와 분무형태로 쏟아지는 소독약을 뒤집어쓴 채 사료 차나 닭·오리 등을 실은 차량 기사님들에게 욕도 많이 듣습니다.
차들이 소독 필증을 받으려면 10분 동안 터널형 차량 자동세척기 통과와 고압 소독기 소독, 15초간 밀폐된 공간에서 연무 소독을 하는 대인 소독기 시설 통과, 운전석·조수석 소독 등 4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한 번의 소독과정을 거친 차량은 농가 한 곳만 방문해야 합니다.
숨쉬기가 힘든 대인소독시설에 들어가자마자 나와 "당신이나 들어가라"고 고함을 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그냥 통과하려 할 때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지만,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농가 예찰도 저희의 중요한 업무인데 최근에는 외부인 차단이 가장 중요한 방역 포인트라서 직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휴대전화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받아 확인합니다.
AI가 발생하면 축산농가도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방역하는 곳들이 훨씬 많지만 밀집 사육을 하거나 충분한 휴식 기간을 지키지 않는 농가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초소를 설치하자 간혹 "왜 우리 집 앞을 감시하느냐"며 항의하는 농민들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종일 승강이를 벌인 뒤에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밀린 다른 일을 합니다.
한 시·군에 3∼4명뿐인 팀원들이 축산물 방역과 식육점 인허가, 부정축산물 단속, 유기동물 관리, 애완동물 소음 민원 등을 전담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달리 모든 시군에 가축방역팀이 생기고 지난해에는 전남도청에 가축방역과도 신설됐습니다.
그만큼 가축전염병이 일상화됐기 뜻이겠죠.
하지만 휴일이 없으니 가정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다들 우리 팀에 오기를 기피하고, 이미 들어온 직원도 빨리 나가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당 직원들의 피로도가 심각해지다 보니 지난해 AI 비상근무 중 공무원 3명이 숨졌고 최근 한 시군에서도 담당 팀장 한 명이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부족한 인원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전문 방역인력 부족과 방역 체계 부실이라는 고질병이 고쳐지지 않은 탓인지 AI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지난 11일 기준 전남에서 AI 검출이 확인된 육용오리 농가는 153곳(5개 시군), 256만 수에 달합니다.
하지만 전남 22개 시군 대부분 수의 공무원이 한 명뿐이거나 아예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습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일반직 공무원과는 달리 수의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지원자를 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지난해 10월 전국 26개 시·군에서 수의 7급 57명 채용 공고를 냈지만 경쟁률이 1.4대 1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14개 시·군은 모집 인원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근무해야 하는 데다가 철야 등 업무 강도가 높지만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에 AI를 막아내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지친 어깨를 펴게 하고 우리 고장을 지켜내려면 이제 사명감과 뿌듯함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 이 기사는 전남 일선 시·군 가축방역팀 공무원들이 전하는 방역 현장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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