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구조소홀'로 커진 제천 화재, '인재' 얘기 그만 들었으면

입력 2018-01-11 19:27
[연합시론] '구조소홀'로 커진 제천 화재, '인재' 얘기 그만 들었으면

(서울=연합뉴스)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29명 사망 등 69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는 소방서의 늑장 대처와 현장판단 실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내외부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된 소방청 합동조사단은 11일 최종 조사결과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참사 원인으론 화재에 취약한 필로티 건물의 구조적 문제, 건물주의 부실한 소방안전관리, 신고와 대피 지체, 초기 소방대응력 부족 등이 지목됐다. 특히 조사단은 "최선을 다해 지휘해야 하는 지휘관들이 상황 수집과 전달에 소홀했고, 인명 구조 요청에 즉각 반응하지 않은 부실도 드러났다"고 했다. 소방청은 지휘 및 대응 부실, 상황 관리 소홀 등의 책임을 물어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을 직위 해제하고, 김익수 소방본부 상황실장, 이상민 제천소방서장, 김종희 제천소방서 지휘조사팀장을 중징계 요구했다. 소방당국은 2차 조사를 해 규정 위반 등 문제점이 드러나면 관련자를 처벌하기로 했다.

합동조사단 발표는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이 빚은 '인재'였다는 것이다.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2층 여자 사우나의 비상통로가 선반으로 막혀 있었던 사실, 7~8층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 등도 재차 확인됐다. 화재 초기 사우나 직원들이 자력으로 진화하려다 실패해 5분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그렇게 신고가 늦어지는 바람에 소방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길이 센 상태였다고 한다.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현장 구조대의 안일한 대처와 판단 실수, 역량 부족 등으로 인명피해를 대폭 키웠다는 것이다. 충북소방본부 상황실은 2층 여자 사우나에서 구조 요청 전화를 받고도 현장 지휘관에게 휴대폰으로 알렸고, 현장 지휘관은 대원들에게 전파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난현장에선 상황을 신속히 전파하기 위해 무전기를 쓰게 돼 있는데 그런 기본수칙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현장 지휘책임자는 또 2층에 구조 요청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후면 비상구 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처음에 세운 주계단 진입계획을 바꾸지 않았으며,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것도 지시하지 않았다. 제천소방서가 불이 난 스포츠센터를 2차례 소방특별조사하고도 특별한 지적사항이 없었던 것도 의문점으로 지적됐다. 소방서와 건물주의 유착 등 부정의 개연성이 큰 만큼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제천 화재 유족들은 전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나와 "화재 발생과 대처 과정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 내용을 보면 유족들이 그렇게 항변할 만한 것 같다. 하지만 더 중요한 과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방인력 확충과 운영체계 개편 등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충북의 소방인력은 대도시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방인력을 늘릴 때 지역 소방관서의 이번 현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소방 지휘관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도 중요하다. 소방당국이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교육프로그램에 미국식 능력평가 제도를 도입한다는 그나마 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새해에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약속, 안전한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려면 범정부 차원의 재난안전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큰 그림을 그리고 법제를 정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당장 가능한 것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다. 사고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비상구를 막은 물건이 있으면 치우고, 잠긴 스프링클러는 다시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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