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난민 유럽행 하늘길 열렸다…난민 162명 군용기로 로마행

입력 2017-12-23 19:08
리비아난민 유럽행 하늘길 열렸다…난민 162명 군용기로 로마행

유엔 "다른 나라도 '인도적 통로' 동참하라" 촉구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엔이 열악한 환경 속에 리비아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해온 아프리카 난민 160여 명을 항공 편으로 이탈리아에 이송했다. 아프리카 난민들이 지중해 뱃길이 아닌 하늘길로 리비아를 떠나 유럽에 도착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22일 이탈리아 군용기 2대는 리비아에서 태운 162명의 난민을 싣고 로마 인근의 군사 기지에 착륙했다.



이들 난민은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예멘 등 내전 발발 국가 출신들로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처지가 특히 취약한 사람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도착한 난민들은 카리타스 등 이탈리아 가톨릭 단체의 보호 시설에 분산 수용돼 난민 자격 심사를 기다릴 예정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뱅상 코슈텔 중부 지중해 특별 특사는 "사상 처음 항공편으로 극도로 연약한 난민들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직접 피신시킬 수 있게 됐다"며 "오늘 도착한 난민 상당수는 난민 밀입국업자에게 붙잡혀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큰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른 나라들도 동일한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리비아에 사실상 갇혀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목숨을 건 항해에 내몰리게 하지 말고, 이번 이탈리아로의 직접 이송처럼 '인도적인 통로'가 확대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군 기지에 나와 도착한 난민들을 직접 환영한 마르코 민니티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인도적인 통로'가 최초로 열렸다. 이번이 시작"이라며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조치는 이탈리아 정부가 지중해를 건너 자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리비아발 난민 행렬을 저지하기 위해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훈련, 장비 등을 제공함으로써 국제 인권단체의 비난을 받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리비아 해역에서 불법 난민 밀입국업자들의 단속을 대폭 강화하며 지난 7월 이래 이탈리아로 유입된 난민 수는 전년 대비 3분의 2 이상 급감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리비아에 발이 묶인 난민들이 리비아의 난민 센터를 통제하는 민병대에 의해 무차별적인 고문, 학대, 성폭행 등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탈리아가 난민들의 고통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달 미국 CNN이 유럽으로 향하려는 꿈을 안고 리비아에 도착한 아프리카 난민들이 밀입국 업자들에게 붙잡혀 '인간 시장'에서 수십 만 원에 거래되는 장면을 포착해 보도, 리비아 난민들이 처한 실상이 생생히 알려지자 전 세계적으로 분노가 들끓었다.

이에 유엔은 리비아에 발이 묶여 있는 난민 가운데 극히 취약한 난민 1천300명을 최우선적으로 받아줄 것을 각국에 긴급히 호소하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리비아는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 후 무법 천지가 됨에 따라 난민 밀입국업자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6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밀입국업자를 매개로 리비아를 떠나 지중해를 건넌 것으로 추산된다. 또, 아직도 수 만 명이 밀입국업자들의 통제를 받으며 리비아에 구금돼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로이터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을 인용, 현재 리비아에 체류하는 난민 수가 70만 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