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新안보전략…오바마 지우고 뒤집다

입력 2017-12-19 11:45
수정 2017-12-19 14:11
트럼프 新안보전략…오바마 지우고 뒤집다

나토 언급 딱 한 차례, 기후변화에는 침묵

중국ㆍ러시아 등과는 협력보다 경쟁에 방점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내놓은 미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에서 '오바마 지우기'를 완성했다.

버락 오바마 전 정권이 우방과의 굳건한 협력 리더십을 통해 자유세계를 주도하고 중국 등 굴기하는 대국과도 파트너십을 강화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조화주의'를 추구했다면 트럼프 현 정권은 중국과 러시아를 라이벌 국가로 보면서 강력히 견제하고 북한 같은 적성국가를 아예 불량국가로 칭하여 갈등을 피하지 않는 동시에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아메리카 퍼스트)으로 하는 '경쟁주의'를 표방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외교부 장관이 종종 비유하는 것처럼 트럼프가 바라보는 세계는 공존과 조화를 도모하는 협력의 장이라기보다는 정글처럼 약육강식의 논리가 압도하는 "경쟁하는 아레나"에 가깝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이던 직전 최신 2015년 판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와 이번 트럼프 보고서는 둘의 세계관 혹은 정치철학만큼이나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면에서 판이했다.

68쪽 분량의 트럼프 보고서는 미정부가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단 한 차례 언급했지만 35쪽 분량의 오바마 보고서는 일곱 차례 거론했다.

트럼프 보고서는 그것도 들어가는 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설명하면서 전후 서유럽 부흥 지원 계획인 마셜 플랜과 함께 나토를 언급했을 뿐이다. 반면 오바마 보고서는 일곱 차례나 나토를 등장시켜 "세계 최강의 동맹이자 역사가 가져온 탁월한 다자 연대"라고 칭송하고 유럽연합(EU)과 더불어 심화해 나가야 할 협력 관계라고 묘사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최강 친선국가들이 포진한 유럽도 트럼프는 제목과 소제목을 제외하면 12번 언급하는 데 그쳤지만, 오바마는 제목과 소제목을 빼고도 19번이나 거론했다.

미국과 더불어 주요 2개국(G2)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중국을 두고선 오바마가 '큰 형님'의 포용적 시각을 내보이며 협력과 우의를 강조한 데 비해 트럼프는 '단일 패권국 = 미국' 개념은 깨진 지 오래라는 인식 아래 눈부시게 커 가는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는 "경쟁국"으로 규정하면서 강한 경계감을 표했다.

구체적으로 오바마 리포트는 중국의 군사현대화와 영토분쟁 야기를 우려하면서도 "전례 없는" 미·중 협력,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국제사회에서의 투 톱 리더십 같은 포인트를 앞세웠다. 그러나 트럼프 리포트는 중국을 경쟁국이라고 못 박고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을 확장하며 자기 이익에 맞게 지역 질서를 재편하는 방안을 추구하고 있다"고 견제하고 비판했다.

일간 뉴욕타임스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는 "전략적 동반자"였던 중국이 조지 부시 대통령 때 "전략적 경쟁자"로 바뀌었다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오바마는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 분쟁과 대 러시아 제재 같은 당시 국제정세에서 주목받을만한 이슈를 거론하는 선에서 우려와 경계를 표하면서도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유럽의 의존 등을 예시한 뒤 "미국은 러시아가 이웃 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더 큰 공조에 나설 수 있다"며 열린 자세를 내세웠다.

트럼프는 그러나 중국과 함께 러시아를 미국에 맞서는 경쟁국가로 정리하고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우리를 동맹과 갈라놓으려는 목표가 있다"라고 비난한 뒤 러시아의 핵무기는 미국에 대해 가장 커다란 실존하는 위협이라고도 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를 싸잡아선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침해하려고 시도하면서 미국의 힘, 영향력, 그리고 이해관계에 도전하고 있다"면서 "경제를 덜 자유롭고 덜 공정하게 만들고, 군사력을 키우며, 자국 사회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정보와 데이터를 통제하려고 작심했다"고 비난했다.

두 보고서의 차이는 기후변화 의제를 두고도 확연하게 나타났다.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는 예의 이번 보고서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해 침묵했다. 그러나 2년 전 오바마는 기후변화 대응이 안보전략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국과 더불어 탄소 저감에 앞장서려는 정부의 태도에 관해 비교적 자세히 적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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