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양파 "20대의 방황 끝내니 제 그릇 인정하게 됐죠"

입력 2017-12-07 18:48
수정 2017-12-07 18:54
20주년 양파 "20대의 방황 끝내니 제 그릇 인정하게 됐죠"

오랜 공백 끝에 8일 싱글 '끌림'…"내 소리에 집중해 몸이 끌리는데로 작업"

"양파는 애증의 이름…'채소의 기분'이란 노래 만들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고교 시절 데뷔했다지만 양파란 예명이 좀 당혹스러웠을 법하다. 껍질을 까도 까도 매력이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예명이 싫었던 적도 있지만 어느덧 20년간 불리며 고마운 이름이 됐다고 한다.

가수 양파(본명 이은진·38)는 고교 2학년이던 1997년 MBC TV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헬로 뉴페이스'로 소개되며 첫 방송을 했다. 그룹 H.O.T가 '전사의 후예'로 1위를 차지하던 그 날이었다.

"계속해서 양파, '애송이의 사랑'."

MC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양파는 통통한 볼에 짙은 립스틱이 어색한 10대였다. 그러나 넓은 음폭의 수려한 가창력을 뽐내며 검은색 장갑을 낀 손으로 '프로' 같은 제스처를 하는 모습은 무척 특별했다. 흑인 음악이 주류가 아니던 시절 R&B를 하는 여자 가수의 탄생이란 찬사도 받았다.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파는 "데뷔 무대는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1996년 12월에 앨범을 낸 뒤 이듬해 3월까지 방송을 못 했어요. 학창 시절 기념 앨범을 낸 것으로 생각하자 했는데 출연 제안이 온 거죠. MBC의 이흥우 PD님이 쌓여있던 앨범 중 우연히 맨 위에 놓인 제 CD를 듣고서 '얘 누구지? 섭외해봐'라고 하셨대요. 첫 방송 때 정말 눈앞이 깜깜했는데 객석에서 제 노래를 다 따라불러 주는 거예요. 감동이었죠."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그는 오는 8일 새 싱글 '끌림'을 발표한다. 지난 2014년 3월 싱글 'l.o.v.e' 이에 이은 신곡이지만 활동을 하는 것은 2012년 5월 미니앨범 '투게더'(Together) 이후 5년 7개월 만이다.

1집이 판매량 80만장을 기록할 만큼 출발은 화려했지만 그의 신보 주기는 무척 길었다. 완벽주의에 결정 장애인 성격 탓도 있지만 유독 외부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다.

"3집(1999)을 끝내고 미국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갔고, 1학기를 마치고 와서 4집(2001)을 냈어요. 회사 문제로 6년의 공백 끝에 5집(2007)을 냈고 다시 회사가 공중분해 되면서…. 또 몇 년을 근근이 보내다가 5집을 함께 작업했던 김도훈 작곡가의 기획사에 2015년 둥지를 틀었죠. 예전에는 남 탓을 했지만 이젠 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생각해요."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나이'에만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놓쳤다는 것이라고 했다. 부지런히 움직여 매년 한 장씩 음반을 발표했다면, 20대 자신의 소리가 차곡차곡 쌓여 성장의 발판이 됐으리라는 것.

그는 "10대는 촌각을 다툴 정도로 맡겨진 일을 수행하며 과하게 열심히 살았고,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는 방황의 끝이었다"며 "그 이후 인정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스스로 어느 정도의 그릇이란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고 돌아봤다.

김도훈이 작곡하고 직접 가사를 쓴 신곡 '끌림'은 몸이 끌리는 대로 작업했다고 한다. 트렌디한 사운드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 나이쯤 돼선 'R&B 성향의 팝이다, 뽕끼 있는 발라드다'라는 구분이 큰 의미가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제 목소리를 들여다봤죠. 소리에 대해 연구했고 리듬감을 살리려고 숨소리를 많이 써서 덤덤하게 내려놓듯이 불러봤어요. 몸이 가는 데로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색깔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끌림'은 양파가 그간 들려준 한국적인 R&B나, 쉽게 전개되는 8bit의 발라드보다 한층 스타일리시하다. 리듬감이 있고 재즈 느낌도 나는 브리티시 발라드다. 그리웠던 사람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설렘이 노랫말에 녹아들었다.

그는 "헤어진 연인에게서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잊고 있던 설렘을 다시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라며 "나이가 들면서 아는 것도 많아지고 일상에 찌들어 그 느낌도 잊고 살지 않나. 점점 설렘을 주는 사람이나 물건도 사라지는 것 같고. 우리 또래나 현대인의 고충을 위로하는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곡을 시작으로 정규 6집의 곡들을 차근차근 들려줄 예정이다. 인터뷰 내내 "이 나이쯤 되니"란 말을 반복한 그는 "10대를 위해 공부 열심히 하라는 노래를 부르기보다 우리 또래에게 어울리는 일상의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곡 중에는 나얼, 윤종신과 작업 중인 곡도 있고 래퍼 등 다른 분야의 가수와 컬래버레이션(협업)도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양파란 이름에 대한 노래도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윤종신의 '팥빙수' 같은 느낌의 곡으로 제목은 '채소의 기분'.

"친구가 '네 이름이 양파인 것을 고마워하라'고 했어요. 띄엄띄엄 나오는데도 양파니까 계속 옆에 있었던 것 같다고요. 하하. '애증의 이름이지만 난 요즘 행복해'란 가사를 담고 싶어요."

그는 이어 "목소리는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니 '공짜로 사는 것' 같은 감사함을 느낀다"며 "직장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가수 중에는 활동을 이어갈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지금 음악을 낼 기회가 주어졌고 변함없이 응원해주는 팬도 있다. 복 받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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