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김종광 "영웅 없는 역사소설 쓰고싶었죠"
이름 없는 민초들의 300일 여행기 왁자지껄한 입담으로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역사소설의 영웅주의가 싫었어요. 홍명희 선생님의 '임꺽정'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죠. 그러던 중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을 접하게 됐는데, 이게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장편소설 '조선통신사 1·2'(다산책방)를 내놓은 김종광(46) 작가는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조선통신사를 전면으로 다룬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바쿠후(幕府, 무사정권)의 요청으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이 소설은 그 중 계미(癸未)년인 영조 39년(1763년)에 떠나 흔히 '계미통신사'로 불리는 제11차 통신사를 다뤘다. 이 통신사에 관한 기록은 당시 이 사행에 참여한 문사들이 남긴 '일관기', '해사일기', '승사록' 등이 있다.
작가는 이 공식 사행록들을 모두 참조하면서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설로 그려냈다. 당시 사행단을 이끈 조엄은 참가자 102명의 이름을 적어놓으면서 총인원을 합계 477명으로 표기했는데, 작가는 이름 없는 400여 명에 주목한 것이다.
책의 맨 앞 '일러두기'에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사행록의 한두 줄을 재구성한 것이 반, 순전한 허구가 반이다"라고 적었다. 소설 속에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 '종놈 삽사리', '격군(배에 짐을 싣거나 잡일을 맡고 사공을 돕는 사람) 추상우, 김국창', '소동(小童) 임취빈' 등이 통신사 인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층 종놈과 격군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똑같은 경험이라도 계층이나 신분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과연 기록이라는 게 어떤 건지 탐구하는 메타소설(소설 창작 과정 자체를 소설의 이야기로 삼는 소설)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또 저는 원래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합쳤을 때 전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이어서 고증된 짧은 기록을 토대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부풀려 봤어요."
기초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그를 토대로 700쪽이 넘는 분량의 이야기를 써내는 데 4년이 걸렸다. 작가는 대부분 한문으로 쓰인 조선통신사 기록에 당대의 고된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낸 사람들의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풍자와 해학이 녹아 있는 걸쭉한 입담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읽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구경은 잘한다. 도대체 이름도 모르겠는 그 진귀한 것들을 얼마나 실컷 봤는지 지금 내 눈이 내 눈이 아니다. 그게 다 어디서 오는 거냐? 불쌍한 팔도 백성들한테 빼앗은 거 아니냐? 다 그만두고 호피, 호랑이 껍데기 말이다, 그것만 열 장은 봤다. 죽여주더라. 호랑이 한 마리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민이 개고생을 해야 하냐?"(본문 65쪽)
작가는 "윗사람들은 거창한 이유를 대지만, 밑에 있는 사람들은 생존을 이유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 마찬가지"라며 "그런 것을 풍자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은 지난 10월 말, 이 소설을 탈고한 뒤다.
"사실 전혀 상관이 없는데, 누군가 유네스코 때문에 이 소설을 쓴 거냐고 할까 봐 괜히 찔렸네요, 하하. 어쨌든 이번 등재를 계기로 이 풍부하고 흥미로운 기록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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