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장 없는 대전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입력 2017-11-28 10:00
[기자수첩] '수장 없는 대전시' 사회적 합의가 먼저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기자 = 대전시 서구 월평동 월평공원(갈마지구)에 아파트를 건립하는 문제를 놓고 대전이 시끄럽다.



이 사업은 월평공원 139만1천㎡ 중 17만2천㎡에 민간기업이 2천700여가구의 아파트를 짓는 대신 나머지를 공원시설로 조성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대전시는 난개발 방지를 위해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는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도시공원을 해제하는 '도시공원 일몰제'가 있다.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도입됐다.

하지만 서울시 면적의 1.3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땅을 살 재력이 없는 정부는 마구잡이로 개발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공원의 70%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나머지에 아파트 등 비공원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월평공원 아파트 건립 논의가 시작된 것도 민간특례사업 때문이다.

문제는 사업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시 도시공원위원회는 이 사업에 대해 두 차례 심의를 유보했지만, 결국 지난달 조건부 가결로 시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반발은 오히려 거세지는 양상이다.

시민단체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청 앞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시장 소속 정당에서도 사업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고, 시의회에서도 공론화 절차를 거치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사업 추진에 강력한 의지를 보인 권선택 전 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시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이재관 권한대행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추진하겠다며 '강행' 입장을 확인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주의로 추진되는 사업이 얼마나 많은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했는지 수없이 봐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드 배치 결정이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우리 경제가 얼마나 휘청거렸는지 기억하고 있다.

대전시민에게 도안호수공원으로 알려진 갑천지구 생태사업도 시민 합의 없이 택지개발에 착수하면서 착공도 못 한 사업에 하루 1천600만원에 달하는 공사채 이자를 물고 있다.

대전시의 공사채 이자 부담은 토지 조성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아파트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피해는 시민이 볼 수밖에 없다.

유성복합터미널 조성 문제도 비슷하다.

대전시와 대전도시공사가 유성복합터미널 사업자 선정 방식에서 보여준 행정의 불투명, 시행사·민간업체 간 이어진 갈등 조정능력 부재가 고스란히 시민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월평공원 사업으로 돌아오면, 이재관 권한대행은 전임 시장이 추진한 월평공원 사업 등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사업들을 다음 시장이 선출될 때까지 보류하는 게 맞다.

행정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이유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현재까지 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대부분이 월평공원 사업에 반대한다는 점도 이 권한대행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을 약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 권한대행이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새로운 시장이 반대한다면 그동안 진행된 사업이 모두 백지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정치 제도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숙의, 참여 민주주의 등으로 불리는 심화 과정이 중요하다.

특히 다수파의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소수파의 의견과 주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사상 표현 및 양심의 자유, 언론 및 출판의 자유 등이 있는 것이 아닐까?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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