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학 제대로 보기…연구서 '번역과 횡단'
16명 학자 참여해 근대 번역문학 본격 연구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한국 근대문학 형성에 필수적이었음에도 독립된 연구가 거의 없었던 번역문학을 깊이 들여다보는 연구서가 나왔다.
'번역과 횡단-한국 번역문학의 형성과 주체'(현암사)는 16명의 학자가 참여해 한국 근대문학에서 번역이 차지한 역할과 그에 따른 우리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을 탐구한 책이다.
이 책을 함께 엮은 김용규 부산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여는 글'에서 "번역문학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결정적이었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서는 변방이나 외부에만 머물렀다"며 "이 글들은 번역문학 연구를 하나의 체계로서, 하나의 장으로서, 그리고 언어 횡단적 문화 현상으로 탐구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번역문학 연구가 부재했던 배경으로 근대 태동한 강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적하며 "자신의 동일성을 뒤흔드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개인의 불안처럼, 번역(문학)이 환유하는 외래적인 것에 맞선 심리적 저항과 거부감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1부 '문화 번역과 근대 번역/문학의 위치', 2부 '번역의 정치와 동아시아의 역로', 3부 '번역장과 복수의 주체'로 구성됐다.
첫 장 ''번역문학'의 정치성에 관한 고찰-직역과 의역의 이분법을 넘어서'를 쓴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근대 개화기에 나온 대다수의 번역물이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번역"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근대 한국어로 번역되고 소개된 작품들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근대의 물결 속에서 갑작스레 낯선 외부에서 들이닥친 '충격의 산물'인 동시에 근대 사상과 문학을 비추는 서광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번역자의 입장에서) 열등한 대상을 일깨우는 일이 급할 때 원문에 충실할 필요성은 그만큼 사라져갔다"고 설명했다.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는 2장 '번역문학 연구의 동아시아적 의의와 방법론'에서 번역이 없이는 세계문학이란 개념을 상정할 수조차 없다고 전제하며 "한국이 동아시아의 최변방에서 식민 지배와 분단 경험을 지닌 소수 언어 사용자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번역문학 논의에서 그동안 포착되지 않은 동아시아라는 키워드를 새롭게 개입시켜 동아시아와 세계문학이라는 지평으로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장정아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 19세기 말 '춘향전'의 불역본 '향기로운 봄'을 분석한 글 '재외의 한국문학 번역장과 '향기로운 봄''과 로스 킹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1920년대 한 선교사의 번역 작품을 연구한 글 '게일과 조선예수교서회' 등이 실렸다.
720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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