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도서정가제 3년…가격경쟁 사라졌지만 소비자는 불만
고사위기 중소서점들 살아나…소비자는 "비싸서 책 못사"
편법할인·재정가 문제 등 제도보완 필요…"정부·출판계 소비자 설득노력 부족"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모든 책의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21일로 시행 3년을 맞는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2014년 11월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법이었다. 그러나 최근 출판계와 서점, 소비자단체가 현행 제도를 앞으로 3년간 더 유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법 개정을 거쳐 2020년 11월까지 연장 시행된다.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에 따라 연장 시행이 결정됐지만 도서정가제의 실효성을 두고는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가격경쟁 사라지자 고사 위기 중소서점 살아나
도서정가제는 무엇보다 서점과 출판계에 만연했던 가격 할인 경쟁이 사라지는 데 일조했다. 그 결과 특히 온라인서점에 밀려 고사 상태였던 중소형 서점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출판인회의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11월 내놓은 '개정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향후 방향' 연구 보고서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를 "출판산업의 생산 측면보다는 '유통'의 측면에서 나타난 개선 효과"로 평가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2016 한국서점편람 분석결과'에 따르면 책만 파는 순수서점은 2015년 말 현재 1천559개로 2013년 말보다 66개, 4.1% 줄어들었다. 서점의 감소세는 여전하지만 2011년 대비 2013년 감소폭 7.2%보다는 감소세가 둔화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오프라인 서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도서정가제 강화 이후 전체 판매 종수가 증가했다는 응답이 35.9%로 감소(31.7%)보다 4.2% 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신간 판매 비중이 증가했다는 응답도 47.1%로 감소 20.5%보다 26.6%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도 늘어났다. 전국의 독립·전문·복합서점은 1990년부터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까지 38곳이 창업했고 2010년 이후에는 연평균 2.5곳이 창업했다. 그러나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는 64개의 서점이 새로 생겨 연평균 25.6곳이 창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 책값 내렸다지만 소비자 실감 어려워
책값은 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소폭 내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교보문고 납품도서 기준으로 신간 단행본 평균 정가는 2014년 1만9천101원에서 2015년에는 1만7천916원, 2016년 1만8천108원으로 1천91원(5.7%)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출간 후 1년6개월이 지난 구간에 대해 출판사가 정가를 다시 매기는 방식으로 할인을 허용한 재정가 제도를 통해 1만285종의 책 가격이 3만99원에서 1만7천646원으로 평균 41.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책값 하락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출판인회의 설문조사에서는 도서 가격을 일반 물가와 비교했을 때 '비싸다'는 응답이 59.2%로 '보통'(37.3%)이나 '약간 싼 편'(2.9%), '아주 싸다'(0.5%)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런 인식은 도서 구입의 감소로 이어졌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2년 동안 도서 구입 권수가 '감소했다'는 응답은 31.0%로 '늘었다'는 의견 13.4%보다 17.6%포인트 높았다.
◇ 편법할인·중고책 판매 규제·재정가제 등 보완해야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3년이 지나면서 그동안 나타난 문제점과 미비점을 보완하고 개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대 15%로 할인폭을 규제했지만 일부 온라인서점 등을 중심으로 제휴카드 할인과 무료 배송, 경품 제공 등으로 추가할인하는 편법할인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곽상도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받은 최근 10년간 도서정가제 위반 적발 및 처리현황 자료를 보면 개정 제도 시행 이후 올해까지 1천511건의 위반 행위가 적발됐다.
특히 2015년에는 321건, 2016년 407건에 이어 올해는 1∼8월에만 766건 적발되는 등 해마다 적발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출판계와 서점들은 자율협약을 통해 소비자에게 제휴카드 할인 같은 제3자 할인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할인'이나 할인의 의미가 있는 유사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문제를 보완·개선하기로 했다.
중고책 판매도 논란이다. 신간 할인율 제한에 따른 일종의 '풍선효과'로 중고책 시장이 커지면서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이 중고로 둔갑해 사실상 할인판매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현재 출간된 지 6개월 미만인 책은 중고책 판매를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출판계와 서점계는 중고책 판매 제한 권고 기간을 6개월에서 12∼18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가 협의할 예정이다.
출간된 지 1년6개월 지난 책의 가격을 다시 매길 수 있도록 한 재정가 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가격을 다시 매기려면 60일 전에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재정가시스템에 알리도록 했던 데서 앞으로는 통보기간을 15∼45일로 줄여 재정가제도 활성화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밖에 출판계에서는 유통 중 훼손돼 출판사에 반품된 리퍼도서나 재고도서의 경우 서울국제도서전이나 와우북페스티벌 같은 대형 도서전·축제에 한해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의 기본 취지 등을 고려해 일단은 현행대로 하기로 했다.
◇ 재연장 논의 과정에 소비자는 소외…출판계 설득 노력 등 필요
이번 도서정가제 연장 결정 과정에서 공론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소비자단체가 참여하긴 했지만 소비자 불만이 상당한 상황에서 공개토론회 한 번 없이 10차례 회의만으로 연장이 결정되자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 도서정가제 연장 결정은 개정 도서정가제의 공과를 평가할 기본적인 통계 자료조차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2015년과 지난해 자료가 대부분이며 올해는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출판계와 유통계는 이번 연장 논의 과정에서야 뒤늦게 "향후 연구조사를 통해 객관적 근거 자료를 확보"하기로 합의했다.
편법 할인과 중고책 유통 규제, 도서정가제에 전자책 대여 포함 여부 등 이해관계가 엇갈린 사안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율협약으로 보완·개선한다'는 식으로 문제 해결을 뒤로 미뤘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최대 15% 할인은 사실상 15%를 할인하라는 이야기와 같은 만큼 정가제라고도 볼 수 없는 애매한 상태"라면서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막가파식' 할인 경쟁은 사라지기는 했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할인 시장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 대표는 "결과적으로는 독자를 위한 정가제가 돼야 하는데 정부도, 출판계도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격 경쟁이 아닌 콘텐츠 경쟁에 집중함으로써 완전도서정가제 실시의 혜택이 결국은 독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정부와 출판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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