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영장 놓고 충돌한 법원·검찰, 국민은 안중에 없나

입력 2017-09-08 18:01
[연합시론] 영장 놓고 충돌한 법원·검찰, 국민은 안중에 없나

(서울=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의 '댓글공작' 등과 관련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된 것에 대해 검찰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8일 '서울중앙지검의 입장'을 내고 "최근 일련의 구속영장 기각은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서 납득하기 어렵다"며 법원을 정면 비판했다. 검찰은 구체적인 영장 기각 사례를 적시한 뒤 "이런 상황에서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법원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지난 2월 영장전담 판사들이 일제히 교체된 이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각각 두 차례 기각되는 등 주요 사건 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데 대해 누적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8일 새벽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영장 외에 유력인사의 청탁을 받고 사원을 부당 채용한 혐의를 받는 한국항공우주(KAI) 임원에 대한 영장도 기각됐다. 이에 대해 법원도 보도자료를 내고 "개별 사안에서 도망이나 증거인멸의염려 등 구속사유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수사의 필요성만을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또 "영장전담법관이 바뀌어서 구속영장 발부 여부나 결과가 달라졌다는 등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측 발언은 심히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법원과 검찰이 영장 문제로 갈등을 빚은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6년에는 대검 중수부가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 청구한 체포 영장과 구속영장 등 4건이 모조리 기각돼 검찰이 강하게 반발했다. 2007년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을 때도 검찰과 법원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검찰의 이번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는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날 기각된 영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에 동원된 사이버외곽팀 팀장에 대해 수사 개시 이후 처음 청구한 것이다. 그런데 첫 영장부터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으니 검찰로서는 실망이 컸을 것이다. 댓글 사건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공판에 출석하는 특별검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청구된 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도 검찰의 감정을 자극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이런 식으로 영장 기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받기 어렵다. 검찰은 법원과 영장갈등이 생기면 통상 언론을 통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중앙지검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성명 비슷한 것을 발표했다. 이 발표문의 내용 중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는 대목은 특히 부적절하고 경솔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새 정부 출범 후 국정농단 수사 등을 진두지휘해온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법원도 "금번과 같은 부적절한 의견 표명은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검찰은 법원에 감정 섞인 비판을 퍼붓기 전에 수사에 미진한 부분은 없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한다. 차제에 인신구속 수사의 타당성에 대해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아도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본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원 발표문의 '수사의 필요성을 앞세워'라는 대목도 검찰의 지나친 수사편의주의를 지적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인신구속에 의존하는 검찰의 수사관행은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 방향에도 맞지 않는다. 법원도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세심하게 숙고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영장항고제' 등 제도적으로 영장 갈등을 줄이는 방안을 사법개혁 차원에서 논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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